독일 통일 전 서독은 동독을 탈출해 넘어온 사람들을 특별 관리하거나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간단한 교육을 거쳐 연고자에게 보내거나 주별로 할당해 정착하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자유로운 TV 시청을 통해 서독 사회를 대체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인식했다. 워낙 탈출자가 많아 체계적 관리가 힘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독일 통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동서독 주민 간의 심리적 정신적 부조화였다.
▷서독에는 우리처럼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하나원)도 없었다. 하지만 동독과 북한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평소 남한을 동경했던 탈북자들이지만 한국사회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해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은 정착해 살아가기가 힘겹다.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다. 여성은 식당 일이라도 하면 된다지만 체력이 약한 남자들은 막노동도 할 수 없다. 남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탈북자를 차별한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겨운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세속적 의미의 성공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17년 전에 탈북한 조명철 씨(52)가 1급 상당의 고위 공직인 통일교육원장에 임명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는 김일성대학을 나온 엘리트다. 남북이 언젠가 통일됐을 때 조 씨처럼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한 엘리트들이 북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당대에는 조 씨처럼 고위 공직자가 될 희망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2세들을 잘 키우면 우리 사회의 성공한 주류에 얼마든지 편입시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 씨의 고위 공직 취임은 탈북자 사회에 큰 희망을 주었다고 본다.
▷통일이 되면 북의 행정체계를 재정비하고 북한 주민들을 통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남북한 사회의 소통과 실질적 통합을 위해서도 탈북자들을 남북의 연결고리로 키워야 한다. ‘탈북자 1호 박사’로 알려진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북5도청을 통일대비조직인 통일청으로 확대 개편하고, 1000여 명의 탈북자 지식인 군단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실력을 키우기 위한 탈북자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