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조직문화를 지키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이 회장은 어제 방위산업 계열사인 삼성테크윈 감사 과정에서 임직원의 부정이 적발됐다는 보고를 받고 “삼성이 자랑하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며 경영진을 강하게 질책했다.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은 지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삼성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룹 감사기능을 강화하고 감사팀을 회사 내부에서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삼성은 임직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예외 없이 엄하게 조치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일을 잘하려다가 저지른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하겠지만 사욕을 위해 부정을 하거나 거짓 보고를 하는 것을 용인하면 기업과 국가에 누를 끼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삼성에서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테크윈의 내부 부정을 공개하고 일벌백계로 다스려 삼성 임직원에게 비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이번 삼성의 내부 비리는 협력업체의 납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 같은 기업에서 이런 비리가 튀어나올 정도라면 다른 대기업이나 공기업도 갑과 을의 관계를 이용해 협력업체의 돈을 받아 챙기는 임직원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회장 말대로 잘나가던 기업도 조직이 나태하고 부패하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과거 성장 과정에서 뇌물 제공 같은 탈법적 수단을 쓴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비자금 조성과 뇌물공여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대기업들이 있을 정도로 잘못된 의식과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의 뇌물을 받아 챙기는 대기업 임직원이 존재하는 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은 빈말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2008년 5.6점 이후 2년째 하락했다. 선진국 기준인 7점대에 이르려면 갈 길이 멀다. 한국의 부패지수는 아시아 16개국 중 9위였는데 그중 민간 분야는 최하위인 16위였다.
관료사회와 정치권이 기업에 ‘손’을 내민다는 고발도 요즘 심심찮게 들린다. 부정부패는 시장경제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삼성이 이번에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고 내부 비리를 단절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용기 있는 자세다. 산업계 전반에 이런 자성과 개혁이 확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