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쯤 평일에 대체휴일(대휴)을 쓰던 날. 터벅터벅 집 앞 영화관에 갔다. 오전 11시쯤 시작하는 영화였지만 그리 크지 않은 극장 안엔 관객들이 제법 들어차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들어온 뒤 극장을 나서면서 나는 놀랐다.
관객 대부분은 중년남성들이었다. 개중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몇 명, 손을 꼭 잡고 가는 금실 좋아 보이는 노부부도 있었다. 하지만 신사복 아니면 등산복을 차려 입은 중년 또는 초로(初老)의 남자들이 가장 많았다. 신문 뭉치를 들거나 배낭을 메고 극장을 나서는 그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평일 대낮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전관예우
정치부로 자리를 옮긴 뒤 평일에 대휴를 쓸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평일에도 ‘원치 않은 휴일’을 보내는 중년 은퇴자들의 전화를 받는 일이 종종 생겼다. 두어 달 전 받은 전화 내용. “동아일보가 의원들의 입법로비에 면죄부를 주는 정치자금법(개정안) 날치기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퇴직자는 의원 후원금 문제보다는, 금배지 달았다고 종신연금을 받는 그들이 그것도 부족해 가족수당과 학자금 보조까지 슬그머니 받아 챙기고 있다는 기사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알려진 대로 국회의원을 지내면 65세부터 월 120만 원의 종신연금을 받는다. 일반 직장인이 월 120만 원의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30년 남짓 매월 30만 원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단 하루라도 금배지를 달면 범죄를 저질러도 매월 꼬박꼬박 120만 원이 나온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전관예우다.
물론 모든 직장인이 의원 연금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공무원은 다르다. 공무원 생활 20년을 넘긴 뒤 정부 부처 국·과장급 이상으로 퇴직한 공무원은 대체로 월 300만 원은 넘게 받는다.
국가를 위해 일한 공무원의 노후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공무원과 일반 국민의 노후 형평성이 지나치게 무너지면 더욱 심각한 사회불안의 원인이 된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 ‘공무원 연금은 또 다른 전관예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는 점을 정권 담당자들이 간과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진짜 전관예우’ 받는 동료 공무원 출신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겐 속 터지는 일일지 모른다. “고시 동기인데 누구는 내 연금보다 ‘0’ 하나를 더 받는다”고 한탄하는 공무원 퇴직자를 본 일이 있다. 로펌이나 금융기관의 고문, 산하단체 장이나 임원으로 가지 못한 건 자신의 ‘무능’ 탓이라는 거다.
직업 선택의 자유 없는 퇴직자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공직자 전관예우 근절 방안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하는 공무원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이 ‘직업선택의 자유’ 운운할 수 있는 것도 기업 등에서 원하는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직장인은 퇴직 후 사실상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 선택할 변변한 직업이 없다는 건 자유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면 평일 오전에 그렇게 많은 중년남자들이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무원에 타 직종보다 많은 연금을 보장하는 것은 ‘전관예우’ 받지 않고도 큰 걱정 없는 노후를 보장해주자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 각층의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두가 조금씩 손해 보며 사회적 컨센서스를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분야의 자기희생이 선행되지 않는 한 “당신들만 천국이냐”며 누구도 승복 못한다. 전관예우 타파가 ‘공정사회’로 가는 첫 계단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한민국이 이른 시일에 이 계단을 넘지 못하면 ‘표(票)퓰리즘’ 때문에 삼류로 전락한 중남미 국가로 가는 건 시간문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