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자살 사태 이후 지원자 더 늘어난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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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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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KAIST 학생 4명의 자살 파문이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학교 내부는 평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부과하는 ‘차등 수업료’ 제도는 폐지하기로 했고 100% 영어수업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도전하고 싶다”는 진취성 돋보여

자살 사태 이후 흥미로운 변화는 이 학교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이 더 늘었다는 점이다. 요즘 KAIST는 일반고 3학년을 대상으로 신입생 150명을 뽑는 학교장 추천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한 고교에서 1명씩 추천을 받은 뒤 KAIST 측이 직접 고교를 방문해 면접시험을 치른다. 지난해에는 이 전형에 639명이 지원했으나 올해는 771명으로 늘어났다. 전국 1500여 개 일반고 가운데 771개 고교가 KAIST에 학생을 진학시키려고 추천한 셈이다. 지원자들의 고교 성적도 지난해보다 더 우수한 편이었다.

4월 실시된 해외 고교 전형에서도 80명 모집에 441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한국인이지만 외국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을 상대로 한 전형이다. 선발 결과 입학생들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은 미국의 명문대학인 매사추세츠공대(MIT) 수준에 이르렀으며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고도 KAIST를 최종 선택한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 KAIST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KAIST는 궁지에 몰렸다. 이 대학 서남표 총장은 국회에 불려가 호된 질타와 함께 사퇴 요구를 받았다. 한때 한국 대학개혁의 전도사로 칭송을 받았던 서 총장은 가녀린 청춘에게 인정사정없이 무한경쟁을 강요한 ‘경쟁 광(狂)’으로 추락했다.

당시 기세등등했던 사회 분위기로는 이런 대학에는 당분간 지원자가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KAIST 측도 올해 입시에서 지원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 그래서 KAIST 입학관계자들은 면접시험 때 학생들에게 지원동기를 물었다.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며 진취적인 자세를 보인 학생이 많았다. 고교 관계자와 학부모들로부터는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 대충 공부를 시키지만 KAIST는 철저하게 공부를 시켜 나중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학교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도 KAIST에 진학하려는 열기가 오히려 높아진 것을 보면 사회 일각에 “경쟁 좀 그만하자”는 시각이 있는 반면 수준 높은 교육을 바라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KAIST에 휘몰아친 강력한 태풍 속에서 우리는 진실의 일부만을 본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자살한 이 학교 학생 4명 가운데 자살 배경이 확실히 밝혀진 사람은 없다. 2명은 차등 수업료 부과 대상이 되지 않는 학점 3.0 이상의 학생이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가 이들을 자살로 내몰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업계 출신으로 자살한 학생도 학점 이외에 사귀던 여학생과의 불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KAIST 측은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 속에 이런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다.

‘반값 등록금’ 선동 경계해야

감성을 자극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 한번 여론의 방향이 결정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사라지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는 강하다. 요즘 ‘반값 등록금’ 논쟁도 그렇다.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촛불시위에 등장한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시행’이라는 구호는 민심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대학들은 다음 학기부터 얼마라도 등록금을 인하하지 않으면 당장 ‘양심 불량’으로 지목될 것이다.

KAIST 사태 때 평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해온 진보 인사들이 비판에 더 열을 올렸듯이 반값 등록금 문제에서도 야당과 일부 세력은 정치 공세의 호기로 삼고 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5월 22일 반값 등록금 문제를 제기한 이후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 여론의 지지가 높아지자 갑자기 전면 공세로 전환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므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과 맞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은 2006년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공약이기는 했어도 2007년 12월 발표된 이 대통령의 공약에는 들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촛불집회에는 ‘이명박 OUT’과 함께 ‘Change 2012’ 구호까지 등장했다. 비싼 대학 등록금이라는 문제의 본질에다 ‘반(反)이명박 정치’, 내년 총선과 대선을 노리는 선동 전략까지 뒤엉켜 혼란상을 연출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 논쟁도 KAIST 사태처럼 몇 달 후 다시 바라보면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닌지 분명해질 것이다. 등록금 부담 완화는 필요하지만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문제의 전체상이 드러나면 해결 방법을 찾는 일도 그만큼 쉬워질 수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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