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갑영]글로벌 대기업의 몰락이 주는 교훈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1931년 경제학자 로베르 지브라는 수많은 기업의 역사를 분석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기업의 성장과 규모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법칙을 찾아낸 것이다. 그가 발견한 ‘지브라의 법칙’은 오랫동안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어떻게 큰 규모의 대기업과 작은 중소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동일하단 말인가. 당연히 대기업은 승승장구할 확률이 훨씬 더 높고, 몰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브라의 법칙은 놀랍게도 지금 세계 곳곳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 업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노키아도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70%까지 석권했던 노키아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는 연초보다 40%나 폭락했고, 신용은 거의 투기등급으로 강등됐으며, 일각에서는 벌써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휴대전화의 제왕 노키아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시장의 표준은 노키아가 만든다’는 자만에 빠져 애플의 아이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붕괴로 핀란드 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니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대기업의 몰락은 비단 노키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전자제품의 총아 소니의 주가는 2000년 3월에 3만 엔에서 최근에는 2000엔대로 추락했다. 게임의 대가 닌텐도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 11월에 7만3000엔에 달하던 주가가 불과 4년 만에 4분의 1로 폭락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IT업계의 선두주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떠한가? 지금의 주가는 10년 전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노키아 소니 닌텐도 MS의 실패

이처럼 빈번한 글로벌 대기업의 몰락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증대되고 기술혁신이 너무 빨라 시장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하고 있다. 실제로 2, 3년 후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누구일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표준화된 기술의 방향도 분명치 않은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당연히 애써 개발한 제품의 수명은 짧아지고 시장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는 기간도 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쟁력의 원천이 급격히 변동하는 것도 글로벌 대기업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는 기술이 가장 확실한 경쟁력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력의 원천이 오히려 시스템과 문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즉,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가 시장을 선도하고 경쟁력도 확보하는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시장점유율은 4%에 불과한데 전체 수익의 40% 이상을 가져가는 애플의 아이폰을 보라. 휴대전화를 새로운 문화의 창조물로 변환시키지 않았는가. 소니의 워크맨이나 비디오가 그랬던 것처럼 일등기업은 항상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도하며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랜 전통에 갇혀 변화를 간과한 거대 기업의 몰락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어떠한가. 다행히 국내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위기 이후 상당한 저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계를 휩쓰는 시장 위험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은 선두를 추종하는 발 빠른 2인자로서 규모가 엄청 커졌지만, 아직도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성공 모델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기업의 운명이 곧 국민경제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는 우리의 경제구조에서는 시장 리스크의 안정적 관리가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대기업 스스로 시장 위험과 변동성에 대응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또한 사회적 책임에도 충실하여 국민과의 일체감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만에 빠져 변화를 간과한 대가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기존의 획일적인 규제 중심의 산업정책은 시장의 위험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은 육성하고 큰 기업은 규제하는 규모 중심의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차라리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산업의 생태계 조성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생태계는 결코 자금이나 기술만으로 조성되지 않는다. 각 분야에 다양한 전문가가 필요하고, 취업보다 창업을 선호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인재도 필요하다. 고도의 전문인력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만 한다. 교육과 산업을 연계하는 정책 시스템을 개발해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노키아와 핀란드 같은 위기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jeongky@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