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원책]뇌물이라는 ‘악마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0일 03시 00분


전원책 변호사
전원책 변호사
뇌물은 쥐약이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쥐는 위험하다는 걸 감지하면서도 쥐약이 든 음식을 먹는다. 쥐약을 먹은 쥐는 영락없이 죽는다. 영리한 쥐는 쥐약을 피해 간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뇌물을 거절한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직 국세청장은 기업체로부터 자문료로 수억 원을 챙겼고, 일부 의원은 로비 단체로부터 수천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뇌물이 쥐약과 다른 점은 쥐약은 쥐를 잡기 위한 것이지만 뇌물은 대가를 받으려 ‘먹이는’ 것이어서 주고받는 동안 공생(共生)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온통 썩었다” 호통친들

그래서 뇌물을 먹은 사람은 돈에 팔린 노예다. 그는 대개 뇌물을 바친 사람의 상전이거나 목줄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자이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돈이나 향응에 넘어간 순간부터 자유는 없다. 이 얼마나 비극적 전환인가? 연방 굽실대며 돈봉투를 바치고 술을 따르고 호텔방까지 여자를 데려다준 업자 따위가 어느 순간 상전이 되는, 이 기막힌 반전이라니! 그러니 그 업자들에겐 노예란 언제든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넘친다. 그런 믿음이 박연차 사건을 낳았고 전직 경찰청장이 망신당한 함바 비리를 만들었다. 이게 우리 사회다.

나라가 온통 썩었다고 난리다. 대통령이 장관과 차관을 모아놓고 호통을 쳤다. 그런들 무슨 소용인가? 뇌물이 법으로 근절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돈의 유혹을 이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뇌물죄로 잡힌 사람이 뻔뻔스러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은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재벌이 권력에 뿌린 돈은 ‘떡값’, 정치권에 안긴 돈은 정치자금으로 불렸다. 순수한 떡값이나 정치자금이란 애초에 없다. 온갖 명목으로 오가지만 속뜻은 다 뇌물이다.

뇌물을 ‘검은돈’이라고 부르는 건 뇌물을 밤에 주고받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 한 평 갈지 않고 장사 한 번 해본 적 없는 전직 대통령 아들이나 전직 고관들이 호화생활을 해도 뒤탈이 없는 걸 보면 하늘에서 떨어진 ‘흰돈’도 있는 모양이다. 이러니 못해 먹으면 바보가 되고, 해먹고 들통 나면 더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됐다. 정치인은 기업체와 공생하고 관료는 인·허가와 단속 등 온갖 칼자루를 쥐고 해먹으니 누가 누굴 나무랄 것인가. 뇌물을 안 주면 깨끗한 게 아니라 눈치 없고 예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해먹는 것은 대체로 학연과 지연 등을 고리로 한다. 그런 연줄은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는 패거리 의식에 근거해 뇌물의 안전성을 높여준다. 전관예우도 그런 고리 중 하나다. 그러니 고관대작을 지내면 법무법인의 고문이 되거나 유관업체의 임원이나 감사로 가는 것이다. 집안에 무슨 불상사가 생기면 방금 검사장이나 법원장, 하다못해 평검사라도 하고 나온 변호사를 찾는다. 광복 후 최대 사기극인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이런 ‘패밀리’ 구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는 특정 지역과 특정 고교, 그리고 전관예우로 연결되는 부패의 사슬이 있다.

“운 나빠서 걸렸다” 생각한다면…


뇌물은 사실 이익을 받는 데 따른 대가다. 그 대가로 정오(正誤)를 바꾸거나 선악(善惡)을 뒤집는다. 부실 공사를 하거나 공사비를 부풀린다. 뇌물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고 선량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열심히 일한 사람을 망하게도 한다. 그 바탕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돈으로 권력을 사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는 생각은 위법과 반칙이 부끄럽지 않은, 속된 말로 ‘양아치’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런 검은 손들이 서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과 국민 세금을 훔친다.

전원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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