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에 비해 내수가 부진하고 소비자물가가 뛰어 서민생활은 경제성장을 입에 올리기 어려울 만큼 팍팍하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 수석비서관 등 87명이 1박 2일 국정토론회를 갖고 골목상권 온기(溫氣) 살리기, 전통시장 활성화, 국내관광 활성화 등 서비스산업을 북돋워 체감경기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장차관들이 모처럼 주요 국정과제를 교감하는 자리였지만 부실하고 정책 효과도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벤트성이거나 해묵은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이날 토론 내용만 놓고 봐서는 정부가 과연 내수기반 확충과 이를 통한 일자리 및 소득 증대, 서민생활 안정과 중산층 복원을 위한 근본적 접근을 하려는 것인지 충분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부 공공기관 기업체를 대상으로 ‘월 1회 전통시장 가는 날’ 캠페인을 확산시킨다거나 정부중앙청사처럼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들도 구내식당을 월 2회 쉬게 해 인근 식당의 매출을 올려주자는 방안도 나왔다. 근본적 내수 키우기 전략은 없고 정부가 자영업에 매출을 나눠주자는 발상이 주류를 이뤘다. 이래가지곤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해 골목상권을 지원하자는 방안은 ‘외국과 우리는 유통환경이 다르다’는 의견이 많아 추후 검토 대상으로 넘겨졌다.
정부는 민간사업자들이 잘 뛸 수 있도록 시장을 조성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번 토론에서 관광산업 육성방안으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전용열차, 수도권 휴양림 같은 방안이 거론됐다. 관광업계보다 현장을 잘 알지 못하는 장차관들이 불쑥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졸속 시행되면 자칫 세금이나 축 내고 내수는 못 키우는 사례만 늘어날 우려도 있다.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대체공휴일을 두자는 방안에 대해 기업계는 “내수 진작 효과는 없고 중소기업 영세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내수를 살리려면 서비스산업에 대한 행정규제를 풀고, 기존업계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는 게 중요하다. 구매력이 있는 소비계층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내수 서비스산업을 창출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서비스시장에 매력을 느껴 자주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돈 있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고급 서비스시장을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비스시장이 발전하면 일자리도 늘고, 당연히 국민 구매력도 커져 내수시장 기반이 단단해질 것이다. 서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이야말로 진정한 친(親)서민 정책이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의료서비스에 자본을 끌어들여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이다. 일찍 서둘러 잘만 했더라면 일자리와 시장을 만들고 국민편익을 키우며 선순환 투자를 통해 산업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일부 전문직 자격사 제도의 개편도 같은 취지였다. 하지만 관련 업계의 반발과 정부 내 견해차로 정책 추진 일정조차 불명확해졌다.
인허가권을 쥔 정부의 시시콜콜한 간섭과 규제만 없어도 민간사업자들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정부가 정책 방향과 원칙을 밝히고 투명하게 시행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시장의 약자를 보호한다는 이념형 겉치레 정책에 집착하다 보면 서비스산업을 키우지도 못하고 소비자 편익만 침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