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시장에 2005년 말 도입된 주식워런트증권(ELW)이라는 옵션상품 거래에 참여한 3만 명의 개인투자자가 2009년 4000억 원 등 4년간 1조 원을 날렸다. 지난해에도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스캘퍼(scalper) 또는 ‘슈퍼 메뚜기’라 불리는 초단타 매매자들은 2009년에만 1000억 원 이상 매매차익을 남겼고, 증권사들도 1000억 원 이상 벌었다. 총 4명으로 구성된 Y파 스캘퍼들은 2009년 말 5개월간 77조 원의 ELW 거래를 통해 총 300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ELW가 ‘개미들의 무덤’이 된 것은 증권사가 스캘퍼와 결탁한 것과 무관치 않음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스캘퍼들은 증권사로부터 ‘속도전’을 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일반 투자자들이 ELW 거래를 하려면 인터넷망을 통해 접속서버와 주문서버를 차례로 거쳐야 하지만 스캘퍼들은 증권사가 만들어 놓은 주문 전용 서버만 거치면 됐다. 속도가 생명인 ELW 거래에서 스캘퍼의 거래 속도는 일반 투자자보다 3∼8배 빨랐다. 일부 증권사는 스캘퍼에게 전산망 해킹을 막는 방화벽까지 건너뛰게 해 거래 속도를 높여줬고, 사무실까지 차려줬다.
증권사들은 하루 수백억 원을 거래하는 스캘퍼 덕에 작년에만 771억 원의 수수료를 챙겼고 개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일부 증권사는 스캘퍼 쟁탈전까지 벌였다. 증권사와 스캘퍼의 뒷거래 사실을 알았다면 일반 투자자들이 ELW 거래에 뛰어들었을지 의문이다.
검찰은 증권사들이 스캘퍼들에게 제공한 특혜는 자본시장법 178조 1항이 금지한 ‘부정한 수단’을 사용한 불법이라고 보고 있다. 증권업계는 VIP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불공정 행위다.
검찰은 스캘퍼 5개 조직 18명, 증권사 임직원 30명과 함께 증권사 대표 12명을 기소했다. 현대 대신 대우 우리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주요 증권사가 포함됐다. 증권업계에서는 ‘과도한 처벌’이라는 반응이 나오지만 일반 투자자들이 손해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숨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금융감독원은 투자자 보호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 ELW 시장 규모는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지만 시장 규율은 바닥 수준이다. 자본시장은 시장 규율이 확립돼야만 선진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