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학원법 개정안 성공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4일 03시 00분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우리 사회에는 학원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존재한다. 우선 학교보다는 학원을 믿고 의지하는 분위기가 있다. 체벌에 대한 학부모 반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교 교사의 체벌에는 예민하지만 학원 강사의 체벌에는 비교적 관대하다.

한편으로는 학원 사업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일명 ‘학파라치’라 불리는 학원 불법운영 신고 포상금제가 그렇다. 역대 정부에서 학원은 민생침해사범으로 항상 감시와 규제 대상이었다.

대한민국 학원 사업자들의 생존 능력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그들은 쉴 틈 없이 바뀌는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성장해 왔다. 변화의 흐름을 미리 읽고 대비하는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년 전 서울 대원중과 영훈중이 시교육청에 국제중 설립 인가 신청서를 내자 며칠 뒤 강남의 한 학원은 이들 학교 입시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그 순발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개교 여부도 불확실한 학교의 입시 정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학부모들에게 무슨 내용을 알려줬는지는 당시 설명회에 안 가봐서 모른다. 이 사건은 초중학생 대상 학원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돼 동업자들에게서까지 질타를 받았다.

이 정도 능력자들이 교육청에서 정한 수강료 규정을 피해 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교재비, 모의고사비, 자율학습비, 논술첨삭비, 통학차량비 등 추가로 돈을 받을 항목은 많다.

따지고 보면 학원 업계가 온갖 규제와 견제를 이겨내고 이만큼 성장한 것은 학부모 덕분이다. 학원들이 편법으로 수강료를 과다 징수하는 것도 학부모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규정보다 훨씬 많은 수강료를 요구해도 거부하거나 신고하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자녀의 성적만 올려주면 된다. 비뚤어진 자녀 사랑의 단면이다.

말 많던 학원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학원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학파라치를 법제화한 것과 수강료 외에 별도 징수해 온 비용을 모두 교습비로 통일해 공개하도록 한 내용이다.

학원 사업자들을 대변해 주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학원법 개정안이 성공하려면 앞으로 만들어질 시행령이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고액학원도 있다. 하지만 학원들이 편법으로 수강료를 높여 받는 데는 교육청이 정한 수강료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이렇다 보니 주무관청에서도 과하지 않은 편법 수강료 초과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아온 것도 사실이다.

획일적으로 적정 교습비를 강제하는 것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건물 안에서도 층마다 임차료가 다를 수 있고 강사의 인건비, 교재 제작비도 다르다. 이에 따라 교육서비스의 수준도 제각각이다. 라면값이 다르듯이 상품과 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다.

교육당국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교습비 상한액을 제한하고 그 범위 내에서 학원들이 자율적으로 교습비를 정하게 하면 어떨까. 이 정보는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되므로 학부모들은 이를 보고 각 학원을 비교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개정안 시행령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학원 사업자들은 또 다른 편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피해는 다시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들은 그 방면에서는 ‘선수’들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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