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개정 형사소송법과 관련해 어제 사퇴를 발표했다. 김 총장은 “사태의 핵심은 합의의 파기에 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일단 합의가 이뤄졌으면 그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합의가 깨지거나 약속이 안 지켜지면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사퇴의 변(辯)이다. 합의가 깨진 것이 김 총장 책임일 수는 없다. 그의 발언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에 대한 항의의 뜻이 강하다. 하지만 공직자들의 합의나 약속이란 것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결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흔쾌하게 수용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검찰은 청와대의 중재로 이루어진 경찰의 수사 개시권 관련 합의안에서 법무부령으로 정하기로 했던 수사 세부 규칙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뀌자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한 법안 내용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바뀌는 것은 대의(代議)민주주의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수사 세부 규칙은 검찰과 경찰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큰 만큼 법무부령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검찰 구성원들은 국회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재석의원 200명 가운데 17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한 것을 마음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불만을 품고 검사장급인 대검찰청 부장 5명이 전원 사의를 표명하고 김 총장까지 사퇴를 예고해 놓은 마당에 사의(辭意)를 거두어들이기 어려웠던 정황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 시기가 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나가 있는 때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고위 공직자로서 금도(襟度)를 보여주지 못했다.
김 총장의 사퇴 강행은 임기가 불과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위성 의미가 다분하다. 중요한 것은 잔여 임기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검찰청법이 보장한 임기를 채웠느냐 여부일 것이다. 총장 임기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민주화 직후인 1988년 도입됐다. 검찰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도 아니고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불만을 품고 물러나는 것은 검찰총장 임기제의 정신을 스스로 허문 처사다. 임기제 도입 이후 임명된 검찰총장 16명 가운데 2년 임기를 마친 총장은 6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 제도가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김 총장도 중도 사퇴 행렬에 숫자를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