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의 이공계 인기는 높았고 자부심도 강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이 집중 육성되면서 각 대학의 화학과 조선공학과 등에는 수재들이 모여들었다. 중고교에서 기술과목이 국어 영어 수학만큼 중요시되었고, 엔지니어에 대한 우대와 병역 혜택 등 각종 지원도 뒷받침됐다. 1980년대에는 전자공학과 등 정보기술(IT) 관련 학과가 큰 인기였다. 이렇듯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배출된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을 바탕으로 2010년 한국의 수출 규모는 4674억 달러로 세계 7위에 올랐다. 반도체 TV 휴대전화 등 IT와 자동차 선박 등의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기술을 확보한 덕분이다. 이는 곧 이공계의 경쟁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분석 전문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매출액 기준 국내 1000대 기업 대표이사급 최고경영자 중 이공계 출신이 43%에 달한다. 모 경제주간지가 최근 조사한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 현황을 보면 공학 계열 출신 비중이 가장 높다.
애플의 잡스, 구글의 브린과 페이지, 아마존의 비조스 등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해 세계 IT 혁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자 대부분도 이공계 출신들이다. 이와 같이 이공계야말로 세상을 앞서서 바꾸어 나가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부와 명예를 얻는데 최적의 전공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영난에 봉착한 기업들이 연구개발(R&D) 인력을 우선적으로 줄이기 시작했고, 이후 벤처 붐이 가라앉으면서 “이공계는 직업 안정성과 비전이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공계 대학생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소위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와 법대 등으로 진로를 바꾸는 등 이공계에 대한 열망과 사명감이 예전 같지 않아 국가 장래에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우수 인재들의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일생 동안 ‘꿈’과 ‘비전’을 추구할 수 있는 정부 지원과 사회 문화적 인프라가 절실하다. 어릴 때부터 재미있게 창의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산업현장과 함께 살아있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모험적인 사업에 도전하도록 함으로써 이공계에 신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첫째, 초중고 기술교육을 살려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기술과목은 입시과목에서 소외돼 변방으로 몰려났으며 그것도 구닥다리 교과서를 가지고 암기식 단답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가장 재미있는 기술과목을 가장 재미없게 가르치는 나라가 된 것이다. 1970년대처럼 국 영 수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기술과목을 우대하고 만지고 만들면서 창의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기술교재, 교사, 교육방식에서 혁명적 개편이 절실하다.
둘째, 대학 이공계 교육이 인문학과의 융합형 산학협력형으로 이뤄져야 한다. 엔지니어가 자기 전공실력 위에 다른 분야를 결합할 때 창의성을 높일 수 있고 미래 기술융합 추세에 맞출 수 있다. 인턴십 교육이 실질화 될 수 있도록 대학은 물론 기업에서 더욱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의 산학협력 지원활동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를 R&D와 같은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공계 출신들이 꿈과 모험에 인생을 걸 수 있도록 사회 경제적 시스템이 받쳐주어야 한다. 우리의 금융관습과 기업지원제도가 실제로는 안전제일주의, 보신주의, 감사 면피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돼 있어 한번 실패는 영원한 좌절의 족쇄가 되고 있다. 이공계 인재들에게서 왕성한 기업가정신을 기대한다면 도전적 실패에도 격려와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는 관리시스템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젊을 때의 실패는 국가 성공의 어머니다. 이공계 인재는 우리나라 국민소득 4만 달러시대를 이끌어 나갈 보배들이다. 열정과 소명으로 자기 길을 개척하는 그들이 “나는 가수다”와 같은 국민적 스타가 되도록 “나는 이공계다”라는 국가적 무대를 펼쳐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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