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스파이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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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3일 20시 00분


평원을 노닐던 나비 한 마리가 전기 보안벽과 철조망을 넘어 접근금지구역으로 날아든다. 나비는 꽃을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시냇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사방 1km를 벗어나지 않고 날갯짓만 했다. 갑자기 거센 북풍이 나비를 내동댕이쳐 몸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나비의 잔해를 발견한 순찰대원이 소스라쳤다. 금속 날개, 전선으로 연결된 흉부, 배터리, 발신기, 광섬유 케이블…. 이 나비의 이름은 ‘파필리오 파노프테스’.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을 지닌 초소형 무인정찰기였다. 첩보소설 ‘룰스 오브 디셉션’의 한 장면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거미 로봇이 가택수색을 하고, 드라마 ‘아테나’에선 무당벌레 로봇이 정찰병 노릇을 한다.

▷‘스파이 곤충’이 현실로 다가왔다. 시제품이 개발된 파리 로봇은 날개폭이 3cm에 불과하지만 극소형 카메라, GPS 수신기, 무선전송장치를 탑재하고 500m 상공으로 날아오른다. 살아있는 곤충에 전자장치를 이식하기도 한다. 바퀴벌레의 촉각과 근육에 원격조종장치를 심고 방사능에 내성을 갖도록 한 뒤 인간 스파이를 대신해 적국(敵國)의 핵물질을 탐지하는 임무를 맡긴다.

▷미국 공군은 최근 다양한 모양의 무인항공기 모형을 선보였다. 공군 연구팀은 나방, 잠자리 같은 곤충의 움직임을 본뜬 무인기 10여 종을 개발 중이다. 이 무인기들은 눈에 띄지 않고 적진에 침투할 수 있어 정찰 임무에 활용될 예정이다. 미군은 이미 위험지역 전투에 소형 무인정찰기를 투입하고 있다. 미국 경찰은 범죄예방과 수사를 위해 2013년부터 작은 새 크기의 무인정찰기를 띄워 수상한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샅샅이 감시하도록 입법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입법은 미국 사회에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스파이 곤충이 상용화하면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이는 군인이나 각종 위험 지역에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에게는 복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007’처럼 온몸을 던져 일하던 직업 스파이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장맛비 내리치는 창가에 새가 날고, 꽃 한 송이 없는 베란다로 나비가 날아들면 얼른 커튼을 치고 목소리를 죽여야 할 일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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