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대화파 숙청에 드리운 金 왕조의 불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5일 03시 00분


남북 대화를 담당하던 북한 고위 인사 10명이 총살당하고 20여 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처리돼 제거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북한에서 대화파와 강경파의 충돌로 권력층이 혼란에 빠졌다는 분석이 가능한 소식이다. 김정일-김정은 세습 과정에서 빚어진 권력투쟁으로 대화파가 제거된 것이라면 남북대화 재개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도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하지만 현재 북한 사정이 복잡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사라진 대표적 남북대화 참가 인사는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다. 북한은 작년 말 김숙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하며 대화에 나섰던 류경을 올해 초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월 이후 남북 접촉에 나선 다른 인사들도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최승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 남북대화 전문가들도 오래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대화에 애를 태운 쪽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온 북한 대표단은 이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이후에도 대화에 매달렸다. 그러던 북한이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우리 측과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공개하고 더는 이명박 정부와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원칙을 고수해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기 힘들어지자 비밀접촉을 공개하고 대화파를 희생양으로 몰아 제거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명령 없이는 대남(對南) 무력도발도, 남북 대화도 할 수 없다. 남한과 대화를 하라고 지시해놓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대화파를 숙청하는 것은 독재자의 비겁한 책임 회피다. 김정일이 추진한 대화를 김정은이 뒤엎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김정일 부자의 갈등이 커지면 북한이 심각한 혼란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남북대화를 이끌어왔다. 북한이 공언한 내년 강성대국 목표를 앞두고 내부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북한 권력층의 동향을 더 철저히 파악하고 치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