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SC제일은행 노사의 한심한 自害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8일 03시 00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제일은행의 서울 북아현동지점 문이 닫힌 채 일주일째다. 6월 27일 시작된 노조의 파업으로 일손이 모자라자 은행 측이 392개 영업점 중 43곳의 영업을 중단했다. 이 은행의 총수신액은 46조 원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지점 영업 중단에 놀라고 화난 고객들이 약 1조 원을 인출했다. 은행 콜센터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SC제일은행 직원 6300명 가운데 노조원 2900명은 강원 속초시의 한 콘도에서 오늘로 22일째(영업일 기준 16일째) ‘휴양 파업’ 중이다. 이들은 외부인사 초청 강연을 듣기도 했다. 회사와 고객들을 팽개쳐놓고 교양과 지식을 함양한다는 것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은행 노조원 최장기 파업 기록을 경신했다.

노사 간 최대 쟁점은 성과급제 도입 문제다. 리처드 힐 SC제일은행장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관철할 것”이라며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제도로 SC그룹 산하 각국 은행들이 모두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노조 측은 전 직원 성과급제 실시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으며 이 제도가 구조조정의 도구로 쓰이거나 직원 간 과당경쟁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 측 견해에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수신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노조의 자해성(自害性) 파업과 회사 측의 일부 지점 영업중단으로는 갈등을 풀 수 없다.

노사 간 상호 이해 부족이 은행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SC는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해 한국 현지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옛 제일은행 출신을 빼고 스카우트한 외부 인사를 요직에 기용해 직원들로부터 ‘점령군’이라는 불만을 샀다. 노조 측은 직원 구조조정 가능성에 민감한 한국 금융계의 현실을 경영진에 이해시키기보다는 강경 노동운동으로 맞섰다. 한국과 영국의 언어적 문화적 차이도 노사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데 일조했다. 김재열 노조위원장은 13일 파업 현장을 찾아온 힐 은행장에게 “직장(직원)을 가족으로 여기는 게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힐 은행장은 ‘직장은 일터’라며 성과를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사용자가 외국계여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SC제일은행 노사의 자해성 대립이 계속되면 은행과 전 직원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자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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