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글래드웰이 쓴 ‘블링크’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의료소송이 많은 미국에서 의술이 뛰어난데도 소송에 시달리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실수를 좀 해도 소송을 당하지 않는 의사가 있다. 실제로 의사의 부주의로 피해를 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의료소송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환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단순히 진료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뭔가 다른 일’이 더해졌을 때라고 한다.
아이폰-아이패드 사후관리 무심
뭔가 다른 일은 환자가 개인적으로 의사에게서 받은 ‘대접’이다. 의료사고 소송을 하는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짐짝이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무시당했다고 불평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의사는 절대 고소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의사가 정말 좋아요. 하지만 그를 고소해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대화하는 모습을 10분 정도만 녹화해서 보면 이 의사가 평생 얼마나 많은 고소를 당할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고소를 당했건 안 당했건 환자에게 주는 정보의 양과 질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차이는 순전히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였다. 고소당한 적이 없는 의사들은 환자를 편안하게 배려하는 식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고소당하는 의사들은 주로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 위치정보 수집 관련 집단소송의 경우 승소 여부가 불투명한데도 소송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1차 집단소송에 3만여 명이 참여할 기세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위치정보 수집 문제나 돈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애플의 사후서비스(AS) 정책 등으로 그동안 쌓였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분출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애플이 보여 온 행보에 대한 반감 또는 경종의 표시인 것이다.
애플은 지금까지 AS에 무심했다. 애플을 향한 소비자들의 짝사랑은 나날이 커져 갔지만 정작 애플은 소비자들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고장 나도 안 고쳐주는 상품’으로 밀고 나갔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이번 집단소송을 통해 소비자를 존중하지 않는 애플의 태도에 경고를 보내고 싶어 한다.
한 소비자 고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맥의 제품 결함 문제를 다뤘다. 사용자들은 제품 결함을 이유로 무상 수리를 요구했지만 애플은 무상 수리가 안 된다는 답변을 내놨다. 애플 측은 제품상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도한 수리비까지 청구했다.
소비자들과 ‘소통’ 강화를
아이폰의 AS 문제도 심각했지만, 애플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그저 깐깐하게 대응할 뿐이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인기로 한국 매출이 급격히 늘었지만 제품 사후관리는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300만 대 넘게 보급됐으나 애플은 자체 AS센터를 두지 않고 있다. 이러니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화날 만도 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애지중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고장이 나도 제대로 수리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사 제품을 계속 기다리며 사게 되는 소비자들은 스스로를 ‘애플 노예’라고까지 비하한다.
최근 기업 마케팅의 화두는 ‘대중과의 소통 강화’다. 소비자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통’이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다.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야 오래간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지속적인 소통을 추구하는 브랜드만이 오래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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