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태까지 꿈을 꾸며 살았다. 그 꿈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와 가슴속에 그 꿈을 항상 간직했다. 그렇게 내가 꿈꿔왔던 일들은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대부분 이뤄졌다. 그래서 나는 꿈꾸는 것은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런데 나에겐 아직까지도 힘든 게 하나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또한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루어졌던 다른 일들만큼 눈에 보이는 일들이 아니었기에 스스로에게도 절실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기는 하다. 지금의 나이에 들어서고 보니 주위 상황이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기도 하지만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사실 난 사춘기 소녀마냥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에 열광한다. 영화나 소설도 사랑이야기가 안 나오면 재미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레작품도 전 세계 모든 이에게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렇지만 정작 나 자신은 사랑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하다.
이탈리아로 공연을 갔을 때였다. 이탈리아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바치(Baci)라는 초콜릿이 있다. 바치는 ‘키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그 초콜릿은 하나하나 좋은 글귀가 적힌 종이에 싸여 있다.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무슨 글이 나올까 하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던 포장의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There is only one happiness in life: to love and be loved(인생에서 유일한 행복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글을 읽는 순간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느꼈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행동했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이유 없이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껴졌던 나의 사랑에 대해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사실 사랑이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인 듯하다. 하나님도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다. 사랑으로 모든 걸 안을 수 있고 용서를 하기도 하지만 사랑 때문에 더 없이 미워할 수도 증오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랑은 오묘하며 복잡하다. 난 아직까지 진정한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의 멘토로 생각하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을 믿지 말고 사랑을 하라”고. 사람을 믿으면 나중에 배신당했을 때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고 하셨다. 비록 배신을 당할지라도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고, 사랑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돌아가신 엄마가 내게 베풀었던 그런 사랑을 나도 할 수 있을까? 사실 당시에는 엄마의 사랑을 난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했다. 내가 엄마를 끝까지 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이리라. 발레작품도 사랑이야기다. 사랑이 얼마나 매력 있고 아름다우면 대부분 발레작품의 주제가 사랑일까.
사랑은 다양하다. 남녀 이성 간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등등. 나는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치고 잊고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사랑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갖는 감정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에 의해 태어나고 사랑으로 성장하며 사랑으로 살아간다. 신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인 것이다. 왜 난 사랑받지 못할까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내가 얼마나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겠다. 이 아름다운 선물을 그냥 내버릴 수는 없다. 죽기 전에 꼭 해봐야겠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특권을 누려야 한다.
‘There is only one happiness in life: to love and be loved.’
나의 가장 큰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의 버킷 리스트 첫째 줄에 이렇게 적을 것이다. ‘1. 사랑하자.’ 이렇게 나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갈 것이다.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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