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착한 기술’로 소외된 사람 보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과학과 기술 앞에 붙는 형용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과학 앞에는 ‘확실한’ ‘객관적인’ 같은 말이 어울리며, 기술 앞에는 ‘효율적’ ‘혁신적’ ‘미래지향적’ 같은 말이 잘 따라 붙는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기존에 없던 발견과 발명을 가능케 하는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이미지이다. 또 이러한 과학기술에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명한 연구자에게 더 높은 명예가 주어진다. 우리는 이 같은 연구개발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최근에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자들은 과학기술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한쪽 방향으로 쏠림으로써 연구자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무시되거나 사장되는 주제들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생물학이 분자생물학 위주로 재편되면서 토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인 지렁이에 대한 연구는 대학에 기초한 생물학 내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식이다. 최근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산재 소송을 이끌어서 법원의 승소 판결을 받아냈던 시민활동가들은 반도체 생산 환경과 백혈병 같은 암 발생 사이의 연관에 대한 연구를 찾기 어려웠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이렇게 수행되지 않은 과학을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라고 부른다.

애플의 첨단기술에만 관심

기술의 경우 꼭 필요한데 개발되지 않은 기술이 더 많다. 엔지니어들은 회사의 방침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영향력 있는 논문을 쓰기 힘들다는 이유에서, 생산 공정이 이미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바꾸기 힘들다는 이유에서 주류 기술에만 관심을 둔다. 휴대전화, 노트북, 스마트카 등은 첨단을 걷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꼭 필요한데 없는 기술들이 많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소비의 흐름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술이 그렇다.

노인들도 대부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데 어쩐 일인지 액정과 자판이 크고 값싸면서 간단한 휴대전화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어느덧 세계시장에 수출되는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지만 행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전기자동차는 비싸고 고장이 잦다. 청각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소형 맞춤형 보청기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보험에서도 지원이 안 되어 여간 재력이 있는 사람들 외에는 사용하기 힘들다. 원자력에 들어가는 돈에 비해 친환경에너지 개발은 아직 생색만 내는 수준이다.

19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주류 기술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당시 인권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은 많은 이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선진국에 존재하는 거대기술과 제3세계의 원시적인 기술의 중간 정도가 되는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중간기술은 지역의 필요와 여건에 기반하고 있고, 노동집약적이며, 비교적 간단하고 저렴하지만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술을 의미했다. 다른 이들은 중간기술 대신에 ‘적정기술’ ‘대안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적정기술 운동은 주류 엔지니어 사회에 파고들지 못한 채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2011년 현재 적정기술 운동은 세계적으로 르네상스를 이루고 있다. 각국의 대학은 적정기술연구센터를 세우고 자국의 소외된 지역과 제3세계를 위한 기술 발전을 고민하고 있으며,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대학에서는 적정기술을 창의적으로 실험해보는 ‘디랩(D-Lab)’이란 수업을 개설해 몇 년째 인기리에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출범 단계지만 적정기술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이 있고, 제3세계를 지원하는 기술에 약간의 국가 연구비가 할당되고 있으며, 실험실 밖의 세상으로도 관심을 돌린 과학기술자들이 ‘국경 없는 과학기술연구회’ 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지식 기부’에 나서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적정기술이 다시 부활하는 이유는 20세기 기술 발전에 대한 반성에 있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발전의 그늘에서 잊혀지고 무시된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은 더 균형 잡힌 발전 없이는 21세기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어렵다는 인식과 통한다. 기술의 발전에 인간을 맞추는 식의 발전이 아니라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비록 작은 규모지만, 시작된 것이다.

일반 시민 위한 기술 개발해야

기술과 관련해서 우리가 요즘 지겹게 듣고 있는 얘기는 ‘우리는 언제, 어떻게 애플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인데 이러한 담론은 모두 첨단기술에 대한 것들이다. 발전의 그늘에 주목하는 적정기술 운동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애플을 따라잡는 혁신적 기술 개발은 기업에 맡기고, 국가와 시민사회는 ‘착한’ 기술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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