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하철 여성 전용칸의 가치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서울시가 여성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철에 ‘여성 전용칸’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혼잡한 출근시간대 지하철은 성추행범의 천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하철경찰대에 따르면 지난해 붙잡힌 지하철 성추행범은 1192명으로 2009년 671명에 비해 77%가 늘었다. 그렇다고 ‘여성 전용칸’을 도입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여성 전용칸 도입으로 일반칸은 더 혼잡해지고 전체적으로 성추행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되레 ‘피해 안 보려는 여성은 전용칸으로 가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는 ‘여성 역차별’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같은 사안을 놓고 완전히 관점(觀點)을 달리하는 쟁점일수록 양쪽 다 반쪽의 진실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안에서 어느 한쪽을 쉽게 택할 경우 다른 쪽의 부작용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차별을 낳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흑인과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확립돼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특별대우를 한다는 것 자체를 차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취임 이후 아랍계 학생들을 우대하기 위해 소수자 우대조치를 도입하려 했으나 인종 종교 성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내세운 반발에 밀려 포기했다.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서구 대도시의 지하철에는 여성 전용칸이 없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006년 지하철에 여성 전용칸 도입이 추진됐으나 여성단체들이 남녀평등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헌법에도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와 흐지부지됐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2000년대 들어 성추행을 막기 위해 도시 지하철과 전철에 여성 전용칸을 널리 도입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여성 전용칸 도입 이후 성추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만에서는 2006년 타이베이 부근 전철에 여성 전용칸이 도입됐다가 3개월 만에 폐지됐다.

스마트폰 시대에 여성들은 치한퇴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말없이 지하철 노선, 역명, 칸의 대략적인 위치를 112로 전송할 수 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지하철 성추행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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