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저축은행 비리 의혹 수사가 한창이던 올 4, 5월 국회는 중수부 폐지 및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문제를 논의했다. 검찰은 중수부 폐지와 경찰의 수사 개시권 법제화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인정하는 국무총리 중재안이 나오자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150여 명이 집단 반발했다. 국회에서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에는 대검 부장 5명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고 검찰총장까지 대통령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퇴했다. 검찰이 스폰서 검사, 떡값 검사 스캔들 때 내부 개혁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조용하던 모습과는 확연하게 비교됐다. 국민의 눈에 검찰이 본연의 수사보다 조직 이기주의에만 매달리는 집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국회에서 폐지론이 나오던 대검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스스로 존재 이유를 보여줬어야 할 텐데도 중간 수사결과는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검찰은 수사 의지와 능력 모두를 불신 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경우 불법 대출해준 돈 5조 원 가운데 사용처가 불분명한 돈이 약 5000억 원이나 된다. 전남 신안군 개발사업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에 대출해준 3300억 원 가운데 1200억 원, 캄보디아 캄코시티 신도시 사업에 대출해준 4300억 원 가운데 3000억 원, 영각사 봉안당 증설사업에 빌려준 860억 원의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 5000억 원은 은행 대주주들이 비자금으로 빼돌렸거나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거나 또 다른 곳으로 새나갔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 주변 500여 개 섬을 국제레저휴양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신안군 개발사업의 경우 경제적 투자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제성도 없는 사업에 3300억 원을 대출해준 것은 정치적 배경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 가운데 1200억 원이 과연 어디로 흘러갔는지 검찰은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국회 저축은행비리 의혹 국정조사 특위도 지금까지 세 차례 특위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증인 채택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느라 조사 일정도 확정하지 못했다. 여야는 3대 정권 10여 년에 걸친 저축은행 비리와 부패의 전체상을 파헤쳐야 명실상부한 국정조사라 할 수 있다. 과거 정권이건 현 정권이건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곳곳에서 짙게 난다. 이를 덮어두고 넘어갈 수는 없다. 정치권이 자기 쪽 비리 덮기에 급급한 국정조사를 끌고 간다면 저축은행 피해자를 두 번 울릴 것이고, 또 하나의 정치 비리가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