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규형]대학들 등록금만큼 잘 가르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2일 03시 00분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반값 등록금 문제가 논란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학과 대학원의 무분별한 난립으로 생겨난 대학교육의 저급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일단 대학 대학원 정원의 대폭 감축은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다. 아무나 다 가고 졸업장만을 위한 통과의례가 돼버린 대학은 지성의 장이 될 수 없다. 또한 졸업해도 바라는 직장을 갈 수 없는 젊은이들의 분노는 축적되고 사회 불안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난립한 대학도 문제지만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 부족은 또 다른 큰 문제다.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에 어울리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가, 학생들은 학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집중하는가. 며칠 전 어떤 대학이 수업을 거의 듣지 않은 학생 2만여 명에게 성적을 주는 ‘학점장사’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부 안 하고 쉽게 학점 받으려는 악습은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대학과 교수는 교육을 등한시한다. 반면 상당수 학생은 진정한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놀거나 여러 이유에서 돈 버는 것에 더 정신이 팔려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대학교육은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수평가를 ‘연구’에서 ‘학생교육’ 중심으로 바꾼다고 천명했다. 연구를 등한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방치했던 교육 기능에도 신경을 쓴다는 뜻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 문제를 이제야 알았나? 잘될까?’ 싶었지만 늦게나마 심각성을 인식했다니 일단은 다행스럽다.

‘논문 쓰는 기계’ 된 대학교수들


그동안 대학과 교수평가의 거의 절대적인 기준은 논문 수였다. 자연스레 교육과 봉사라는 다른 기능은 대체적으로 무시됐다. 많은 교수가 승진과 재임용에서 살아남기 위해 ‘논문 쓰는 기계’로 변해야 했고, 본의 아니게 다른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 47개국 850개 대학 모임인 유럽대학협회(EUA)는 6월 “대학 평가방식이 지나치게 연구 성과에만 치우쳐 교육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교육 품질을 놓치고 있다”며 “대학은 평가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라는 지당한 말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의 균형을 추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학의 특성에 따라 역점을 달리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테크니션을 육성하는 학교에선 당연히 학생들을 좋은 기술자로 키워내는 교육이 주가 돼야 한다. 이런 목적의 대학에서 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등재 국제학술지의 논문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연구 중심의 대규모 대학에선 연구가 중심이 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교육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대표적인 연구중심대학인 하버드대에서도 교육을 경시해선 안 된다는 교수들의 선언이 있었다. “하버드대 교수들은 강의 하나하나에 마치 연주자가 음악회를 준비하듯 정열을 쏟는 강의를 한다”(장한나 동아일보 인터뷰). 교육경제학의 대가인 에릭 하누섹은 비싼 교재나 첨단시설 등은 학습 능력 개선에 그다지 효과가 없고, 학교에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자로서 적성이 맞지 않는 선생님들은 다른 직종으로 전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교에 다 해당되는 얘기이다.

중등학교에선 교사평가가 사실상 없으니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선생 때문에 어떤 과목을 좋아하게도 되고, 싫어하게도 되며 그것이 학생의 인생을 결정짓기도 한다(로테 퀸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그만큼 교육에서 선생의 능력과 열성은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선생의 교육적 능력은 운동선수의 능력처럼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노력과 열성 여하에 따라 일정 수준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다.

학생 교육 중시하는 교수 평가로


중등교육에서의 교실 붕괴는 정말 심각한 상태지만 대학에서의 교육 경시도 반값 등록금 이전에 신경 써야 할 국가적 문제이다. 성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혼(魂)이 빠진 교수들의 수업, 그리고 학생들의 텅 빈 눈만이 존재하는 교실을 상상해 보라. 사회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가. “인간의 천성은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대부분의 학생은 좋은 수업과 지도를 받고 싶어 한다. 교육 구조상의 문제와 잘못된 방향 설정이 이런 열망을 가로막고 있다. 사회와 대학과 교수들은 이런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원한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베이스라인이 오르막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 모든 야구 선수들은 그만두어야만 한다.” 필자도 교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고 생각될 때 미련 없이 교단을 떠날 것이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gkahng@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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