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병규]정략적 포퓰리즘의 부메랑 효과

  • Array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경제정책의 ‘포퓰리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어원상 포퓰리즘은 ‘서민 대중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 상황을 보면 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경기와 소득 양극화로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점은 발표되는 서민 경제정책들이 정말 국민 생활을 걱정하고 이를 위한 것인가라는 ‘진정성’ 여부가 불투명한 데 있다. 생산적 포퓰리즘과 정략적 포퓰리즘을 명확히 구별해야 하는 연유다. 양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정책의 경제적 현실성과 지속 가능성으로 설정할 수 있다. 생산적 표퓰리즘은 실현 가능하고 지속성을 유지하여 서민 생활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국민 경제의 활력을 드높이는 것을 뜻한다. 정략적 포퓰리즘은 정책 추진의 현실성과 지속성이 결여돼 오히려 국민 부담을 늘리고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나라의 재정 상태나 성장 여력을 감안하지 않고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고 선동하여 선거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표만을 얻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 정략적 포퓰리즘이다. 이는 정책 당국이나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으로 정파나 개인 입지를 강화하려는 ‘사익 추구 행위’에 불과하다. 만일 반값 등록금이 대학 형편이나 국가 재정상 실현 가능성이 낮고 지속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도 관련 유권자가 1000만 명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해 이를 관철하려 한다면 정략적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 되는 셈이다.

한순간 대중 환호 얻겠지만…

정략적 포퓰리즘은 한순간 대중의 환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국가와 사회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크나큰 재앙을 입히는 ‘부메랑 효과’가 발생한다. 가장 큰 화를 입는 것은 정부 재정이다. 국민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서는 막대한 공적 재원이 소요된다. 요즘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의료, 노인, 아동, 교육, 주택 등과 관련한 복지정책을 실현하는 데 무려 60조 원이나 든다는 계산도 나온다. 올해 전체 예산인 309조 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한국은 중산층이 갈수록 엷어지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다양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일과성 복지정책 구상에 대한 유혹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표를 얻기 위한 재정 지출의 급증은 정치인들에게 일시적이나마 득이 될지 모른다.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국민 모두를 ‘빚두루마기’ 신세로 전락시키는 게 문제다.

인기를 얻기 위한 복지 지출은 ‘비가역 함정’의 독성마저 지니고 있다. 한 번 지출하기 시작하면 이를 줄이거나 중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지속성이 결여된 정략적 포퓰리즘에 의한 정부 지출 증가는 재정 악화로 나라 경제를 곤경에 빠뜨리는 한편 정치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부메랑 효과를 초래한다. 유로 경제권의 골칫덩이가 된 그리스는 과열된 정쟁으로 선심성 정부 지출이 크게 늘어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지만 이를 축소하는 데 대한 반대 시위로 정치 사회 혼란이 가중돼 경제 회복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략적 포퓰리즘은 대다수 서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부유층이나 대기업을 비난하고 공격하려는 이념적 성향도 지닌다. 사회 계층 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대중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은 이를 신봉하는 정치인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선거에 이기는 것에 급급하여 무리한 공약을 하면 나중에 약속을 지키는 것이 힘들게 마련이다. 지역 숙원 사업이나 저소득층의 애환을 덜어준다며 자신의 권한과 능력 밖의 각종 시설 확충이나 재정 지원 등을 남발하는 것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을 더욱 키울 뿐이다. 무리한 공약으로 한 번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나 이를 실현하지 못할 경우 다음에는 유권자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총선이나 대선이 아직도 먼 시점에서 다양한 포퓰리즘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은 기간 충분히 정책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까닭이다.

정치인 ‘정책 제안 명부’ 필요

한국 경제는 지난 50여 년 동안 빠르게 발전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더 성장하지 못하는 ‘중진국 함정’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득 2만 달러 단계에서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가려면 분배 몫 나누기에 치중하기보다는 지속 성장이 가능한 분배와 복지체제를 갖추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후세대들에게 과도한 짐을 떠넘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쉴 새 없이 쏟아질 서민 경제 안정을 위한 재정지출 정책들이 정말 서민의 아픔을 감싸 안으면서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인지 면밀히 검토하고 규명하는 ‘매니페스토 운동’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국민 복지정책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제기하는 정책들을 기록해 정리하는 ‘정책 제안 명부’를 작성해 나갈 필요도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