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차가운 얼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내를 읽기 힘들다.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끔찍한 살육을 저지른 자의 사진을 신문에서 바라본다. 유럽의 거리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그저 평범한 얼굴이란 것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한다. 증오를 신앙으로 포장한 그 광기는 어디에 감춰둔 것일까. 겉으로 봐서는 인간과 괴물을 도무지 가려내기 힘든 세상이다. “사람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유럽에 가서 상도 받고 한 홍상수 감독은 오래전 영화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보다 훨씬 전에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 시인은 이런 시를 남겼다.
노르웨이서 야만적 테러 충격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중략)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신동엽의 ‘산문시1’)
문명의 가면을 쓴 야만적 테러는 평화의 땅으로 각인된 스칸디나비아의 얼굴에도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머나먼 노르웨이의 깊은 슬픔이 남의 일 아닌 듯 다가온다. 이젠 지구촌 어디서도 이성과 양식이 통하는 나라를 꿈꾸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시절인가.
21세기 십자군을 자처한 광신주의자는 자신의 종교를 모독하는 씻기 힘든 죄를 범했다. 테러범의 궤변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선행을 통해 표현된다고 가르친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말이 떠오른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되도록 오랫동안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
세상을 향해, 타인을 향해 선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달 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76세 생일 기념 법회에서 “내 평생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모든 이의 삶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열린 마음과 연민이 착한 영혼들의 세상을 만드는 첫 발자국이 아닐까 싶다. 그의 기도문을 다시 새겨본다.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내가 큰 희망을 갖고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그리고 나로 하여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게 하소서./남들이 알지 못하게 모든 존재의 불편함과 고통을 나로 하여금 떠맡게 하소서.’
지금 난 어떤 얼굴로 살고 있을까?
증오와 동정심이란 두 얼굴을 가진 인류, 마침내 어떤 얼굴이 지구별에서 승리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날그날 우리 얼굴은 연민과 미움 사이를 오간다. 지금 나는 어떤 얼굴로 살고 있나, 거울을 꺼내 들여다본다.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길러지고 있었는데/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대문짝만 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찔끔 놀라게 하는데/오늘날 우리도 때마다/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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