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범석]산사태보다 더 무서운 서초구의 ‘거짓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일 20시 00분


김범석 사회부
김범석 사회부
“왜 피하는 겁니까. 우리가 두렵습니까?”

지난달 2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청 1층에 고성이 터졌다.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유가족 10여 명이 원인 규명과 보상 문제를 논의하자며 진익철 서초구청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들은 오후 5시에 진 구청장과 면담 약속이 돼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자 구청 관계자가 유족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진 구청장이었다. “왜 오지 않느냐”는 유족의 질문에 그는 “현장에서 복구 작업 중이니 부구청장과 상의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진 구청장은 이날 유족들이 돌아간 뒤 오후 10시 반이 돼서야 구청으로 복귀했다. 서초구청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구청장실이 있는 5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도록 조작을 해뒀다. 구청의 한 간부는 “유족들이 구청장실에서 격한 행동을 할까봐 걱정이 돼 그랬다”고 털어놨다. 유족들은 “구청장은 우리를 만날 생각이 없다. 속았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유족들의 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초구청의 계속되는 거짓말 때문이다. 서초구청은 면담 약속을 깬 뒤부터 ‘거짓말 시리즈’를 내놓았다.

서초구는 산림청 시스템에 등록하는 직원들의 연락처를 업데이트하지 않아 26일 오후 5시 24분 처음 전송된 산사태 경고 문자메시지(SMS)를 엉뚱한 직원이 받도록 방치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문자 자체를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진 구청장은 29일 오전 문자 수신 사실을 보고받았다. 그 시간에 서초구는 “메시지를 못 받았다”는 보도자료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30일 오전 슬그머니 산림청 시스템에 직원 5명의 연락처를 새로 등록했다. 물론 이 사실도 감췄다.

거짓말이 드러나자 서초구청 관계자는 “처음에 잘못 해명했다가 문제가 커져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계획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일종의 ‘애드리브(즉흥 대응)’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서초구의 거짓말을 단순한 실수로 믿지 않고 있다. 서초구의 책임 여부가 쟁점이 되는 상황에서 메시지 수신 여부는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서초구가 책임 회피를 위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 구청장은 2일 오전 기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복구 현장에 나와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유족들에게 했던 것처럼 진실을 규명하려는 언론도 피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진 구청장에게 필요한 것은 복구현장을 찾는 것보다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거짓말은 산사태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김범석 사회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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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2 23:59:51

    공무원들은 국민들의 머슴인데 한국은 어찌된판인지 공무원들이 귀족같이 거만하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해대고 국민들을 무시하고 부려먹는다.서초구청장과 관련 공무원들을 직무유기등에 의한 살인혐의로 즉각 구속해서 엄벌에 처하도록해야한다.이런 파렴치한 공무원들은 국민들을위해 일할 자격조차없다.책임을 회피하기위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하다니 기가찬다.선진국에서는 거짓말이 살인죄와 같이 중범죄에해당한다.국민들이 저런 몰지각한공무원들을 귀중한 세금으로 먹여살려야할 하등의 가치가 없다.해당공무원들을 파면조치하고 법의 심판을 받도록 고발조치해야한다.

  • 2011-08-03 10:55:38

    진익철 구청장님, 이쯤에서 물러나시죠"솔직히 자격이 없습니다요' 돈 방석위에 앉아 무얼생각하고 게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억수같은 장대비가 온다면 손수 맨발벗고 뛰어다녔어야죠'. 피하는 것이 좋을지는 몰라도 피해자 입장에서 죽이고 싶을겁니다. 일본인들같으면 아마 한강에 투신할것이 나을겝니다.

  • 2011-08-02 22:34:43

    서초구청장! 당신은 한나라당 소속이지? 한번 빚나간 민심은 돌아오지 않는 법. 당신으로 말미암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신이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서초구는 한나라당의 텃밭이 아니던가! 지난 재보선에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성남분당에서 국회의원으로 누가 당선됐는지 마음 속 깊이 새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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