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65>밀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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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5일 03시 00분


칠월 칠석에 부쳐 먹으며 집안의 평안 기원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이 칠석(七夕)이다. 지금은 애틋한 사랑 이야기만 전설처럼 전해지지만 예전에 칠석은 동양 공통의 명절이었다. 칠석의 유래는 어떻고 이날 먹었던 전통음식은 무엇일까.

견우와 직녀는 별 이름이다. 견우성(牽牛星)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Altair), 직녀성(織女星)은 거문고자리의 베가(Vega)라는 별이다. 은하수 서쪽과 동쪽에서 빛나는 별인데 칠석 무렵 머리 바로 위에서 근접해 빛나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견우와 직녀 전설이 나왔다.

최남선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밤하늘을 관측한 고대인들은 주(周)나라 이전부터 음력 7월 7일이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 년에 한 차례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기원전 7세기 이전 주나라의 노래를 엮은 ‘시경(詩經)’에 견우직녀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소아(小雅)편에 실린 “밤하늘의 직녀는 별이 떠서 질 때까지 밤새도록 떠있는데 긴 시간 동안 비단 한 필을 다 못 짜니 건너편에 빛나는 견우의 상자를 채울 수가 없네”라는 노래다.

시경의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정치적 풍자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초기 무능한 주나라 왕실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이 담긴 노래라는 것이다. 직녀성과 견우성은 이름과 달리 비단도 못 짜고 마차도 끌지 못하니 당시 통치자들을 견우와 직녀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지위만 높을 뿐 백성을 위해 일하지 않으니 유명무실한 지도자라는 원망이다.

문헌을 보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근접하는 천문학적 현상이 사랑 이야기로 발전한 것은 1, 2세기 한나라 때이고 6세기에 전설이 완성되며 10세기 송나라 때부터 명절로 자리 잡는다. 우리도 408년에 축조된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이미 견우와 직녀성이 그려져 있다.

칠석이 명절로 발전한 것은 천문학적 특이현상이 일어나는 날, 농업을 상징하는 견우와 옷감 짜기를 대표하는 직녀 전설에 빗대 풍년과 좋은 길쌈을 소원한 것에서 비롯됐다.

고려 중엽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칠석이면 부녀자들이 뜰에 오이와 참외를 차려놓고 오색실을 바늘에 꿰어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나온다. 사실 수십 년 전까지도 칠석이면 할머니들이 장독대에다 정화수를 떠놓고 밀전병을 부치고 햇과일을 차려 가족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 칠석 치성을 드렸다.

이렇게 칠석에 먹던 음식이 밀전병이고 밀쌈이다. 1931년 8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여름 요리로 밀가루에 애호박을 채쳐 넣고 밀전병을 부치는데 호박이 없으면 파나 미나리를 넣기도 하고 풋고추를 썰어 넣는다며 밀전병에 소금 대신 고추장을 풀어서 부쳐도 빛이 붉고 맛이 괜찮다고 했으니, 애호박이나 고추장 부침개를 부쳐 먹는 것이 우리의 여름철 풍속이었다.

고려 말기의 이색도 유두절(流頭節)을 맞아 “상당군 댁 부침개 맛이 참으로 일품이라/하얀 부침개에 달고 매운 맛이 섞여있네”라는 시를 읊었다. 고려 때 부침개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이면 밀전병을 부쳐 먹으며 더위를 달랬던 것이다.

올해는 칠석이 양력 8월 6일인데 옛 풍습대로 밀전병을 먹으며 밤하늘의 별도 보고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도 좋겠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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