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에서 ‘펴엉창’이란 말이 나온 순간 맨 앞줄에 앉아 있다가 김연아 선수와 함께 환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그 먼 아프리카 끝까지 발품 파는 대통령의 열정이 뿌듯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국제무대에서의 화려한 성과와는 달리 최근 물가, 전·월세 대란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친(親)서민 중도정책이 빛을 발하고 4대강 사업이 완공돼 가시적 성과를 보여준다면 제2의 청계천 기적으로 지지도가 다시 수직 상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과들을 통해 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지금부터라도 현대그룹 최고경영자(CEO)와 서울시장 시절의 ‘성공의 환상’에서 벗어난다면 그 가능성은 높아질 것 같다. CEO에 대한 평가는 ‘계량적’이고 서울시장은 ‘가시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이다. CEO는 영업실적이라는 계량적 수치에 따라 능력을 인정받고, 외교 안보 등을 다루지 않는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같이 눈에 띄는 가시적 시정을 잘하면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은 재임 시 인기나 지지율보다도 세월이 흐른 후 역사가 평가한다.
“8년간 대통령으로서의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미국의 역사가 할 것이다.” 최근 출간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회고록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재임 시 갈채를 받던 일들이 금방 잊히는 반면 온갖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국가지도자로서 소신을 갖고 밀어붙인 정책이 역사적 업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反포퓰리즘과 FTA에 전력을
정확히 1년 7개월. 이명박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남은 기간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역설적이지만 별로 인기도 없고 쉽지도 않아 대통령 본인이 가장 하기 싫은 일부터 하면 된다. 당장의 지지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모두가 나서기 싫어하지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다음 세 가지를 먼저 해야 한다.
정치권은 지금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심을 잡기 위해 전면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지역개발 등 선심 보따리를 풀어놓기에 바쁘다. 후손에게 빚만 남기는 광기(狂氣) 어린 퍼주기의 맹독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재정 건전성을 지킬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물론 산타클로스가 던지는 선물에 열광하는 국민 앞에 반(反)포퓰리즘의 깃발을 드는 것은 정말 인기 없는 악역이고 한나라당과도 각을 세워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나라를 남미나 그리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 좁은 국내시장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미국과 중국시장의 문을 좀 더 활짝 연다면 중장기적으로 50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빨리 비준시키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재임 중 중국과 FTA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반미(反美) 정권이라 매도되던 전임 대통령이 온갖 역풍을 무릅쓰고 소신을 관철해 성사시킨 미국과의 FTA인데 최고의 한미관계를 치적으로 내세우는 현 정부가 국회 비준동의 하나 갖고 3년을 질질 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개방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반대하는 정치권과 끈기 있게 대화하며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거대한 중국시장의 빗장을 활짝 풀기 위해 총선이 끝나 정치적 부담이 적어지는 내년 봄쯤 과감히 베이징과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대규모 시위가 뒤따를 테지만 한중 FTA는 단순히 시장개방의 의미를 넘어 북핵,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 칼자루를 쥐고 있는 중국과 경제동맹을 맺는다는 또 다른 역사적 의미도 지닌다.
국방개혁 마무리, 안보 강화해야
마지막으로 우리 군이 다시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북의 군사적 도발에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안보 리더십을 발휘해 국방개혁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일부 예비역 장성과 의원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핑계가 될 수 없다. 만에 하나 안보와 국방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집권 후반기 레임덕은 피할 수 없다. 청와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정치권, 시민단체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내년 표밭에 사활을 건 정치권과 달리 선거를 의식하지 않는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마음을 비운다면 국가를 위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남은 기간 확고한 소신과 리더십, 그리고 땀과 눈물로 국민에게 호소하고 정치권과 대화하며 국정의 큰 매듭을 풀어 나간다면 역사는 이 대통령을 아주 성공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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