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가장 좋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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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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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발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유명해진 양주가 ‘시바스 리갈’이다. 12년산에 알코올 도수가 43도인 이 술은 요즘 기준에서 보면 당시 한국의 최고 권력집단이 마셨다고 하기엔 수수해 보일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막걸리에 맥주를 탄 '맥막'을 즐겼을 정도로 서민주도 좋아했다. 첫 국산 양주가 선보인 것은 1978년의 일이고 위스키 원액을 만든 건 1981년이다.

▷고급 양주의 대명사 ‘조니워커 블루’가 알코올 도수를 43도에서 40도로 낮춰 9월 한국 시장에 내놓는다. 1867년 출시될 당시 유럽과 미국 시장에는 40도로 나왔지만 동양 주당(酒黨)들의 독주 선호를 감안해 한국과 일본 시장 판매제품은 43도로 공급했다. 보통 59도 정도인 위스키 원액을 희석해서 만드는 국산 위스키는 대부분 40도 정도다. 수십 년 동안 나름대로 차별화 전략을 썼던 조니워커가 점차 순한 술을 찾는 한국인의 ‘입맛’에 영합하는 듯하다.

▷대표적 대중 술 소주는 30도(1960년대)→25도(1973년 이후)→23도(1998년)로 점차 도수를 내리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20도를 넘는 소주를 찾기 어려워졌다. 알코올 도수를 낮출수록 판매가 늘어난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하지만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16도짜리 소주를 마신 뒤 과연 “캬∼” 하는 소리가 나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폭탄주 ‘뇌관’도 양주에서 소주로 넘어가는 추세다. 발렌타인 30년산(43도)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위스키 문화가 확연히 퇴조하는 사회 분위기다.

▷막걸리와 와인이 술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아무래도 웰빙 바람의 영향이다. 주당들이 건강과 다음 날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조금이라도 순한 술을 찾는 것이다. 레드와인이 심장에 좋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판매액이 오르고 있다.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7도, 와인은 7∼13도 정도는 된다. 순하더라도 술은 술이다. 낮은 도수의 술이라도 많이 마시면 독한 술을 조금 마시는 것보다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 술을 끊을 수 없는 것이라면 가장 좋은 술은 절주(節酒)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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