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류 스타들이 눈부신 성공담을 전해오는 동안에도 인터넷에서는 혐한류(嫌韓流) 루머들이 끊임없이 떠돌아다녔다. 장근석은 “일본에 진출할 때 일인당 2000엔의 사례금을 주고 알바생을 고용해 환영 인파로 위장”했고, ‘카라’는 “성상납설의 주인공”이며, ‘소녀시대’는 “멤버 간 학력차 때문에 곧 해체된다”는 식이었다.
7일 도쿄의 민영방송사인 후지TV 앞에서 열린 한류 반대 시위는 인터넷의 혐한류 현상이 오프라인에서의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첫 사례다. 발단은 배우 다카오카 소스케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었다. 그는 후지TV가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방영한다며 “일본인은 일본의 전통 프로그램을 원한다”고 적었고, 이후 극우 인사들의 동조 발언이 이어졌다. 전 항공자위대 막료장(참모총장)인 다모가미 도시오는 “TV에서 한류 드라마가 하루 종일 방송되는 것에 나도 위화감을 느낀다”고 했고, 나카야마 나리유키 전 문부과학상은 “(한류에 지배당한) TV계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한류에 대한 반감을 뜻하는 ‘혐한류’란 용어는 2005년 일본에서 양국간 외교 현안을 극우 성향으로 접근한 ‘만화 혐한류’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이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때마다 혐한류는 어김없이 되풀이돼왔다. 일본의 혐한류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부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일부 누리꾼이 주도하는 내셔널리즘이 원인으로, 이들의 비뚤어진 문화 애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일본의 문학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는 이 인터넷 내셔널리즘에 대해 ‘긴밀한 사회성을 추구하는 커뮤니케이션 현상’이라는 흥미로운 진단을 내렸다. 내셔널리즘을 핑계로 친밀감과 소속감을 추구하는 과정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혐한류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의 저자인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이들의 내셔널리즘을 ‘불안형 내셔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불안형 내셔널리스트는 한국의 88만원 세대, 임시직을 전전하는 일본의 프리타족, 경제 성장과 정치적 무력감 사이에서 조울증을 앓는 중국의 다이예(待業·취업을 기다린다는 뜻)족으로 쉽게 말해 청년 백수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고용 불안을 겪고 있는데 이 불안감이 반일 반한 반중 감정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는 진단이다. 내셔널리즘은 경제적 불안에 내몰린 청년들의 도피처라는 것이다.
결국 청년 실업 문제를 외면한 채 혐한류의 원인을 내셔널리즘에서만 찾는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울지 모른다. 일본의 혐한류는 ‘2채널’이라는 사이트가 주도하고 있고, 이 사이트의 주요 이용자는 10∼30대 젊은 남성들이다.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도 비주류로 분류된다. 실제로 ‘만화 혐한류’는 4권까지 나왔음에도 일본 내 한국 이미지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고, 7일 열린 반한류 시위를 언급하는 일본 주요 언론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일본 사회의 주류가 될 것이며, 이들의 온라인 분노는 언제든 오프라인의 단체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 그리고 내셔널리즘은 취미이든 진심이든 폭발성은 똑같이 강하다. 혐한류에 시달리는 소녀시대와 88만원 세대를 다룬 소설 ‘철수사용설명서’의 취업준비생 철수의 현실은 이렇게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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