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훈]알맹이 없는 물가장관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사과 배 밤 대추 등을 각각 사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구매해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제사상에 올라갈 과일만큼만 세트로 만들어 팔면 어떨까?’ 제수용 과일 종합세트 제작방안은 대형마트의 기획상품 담당자가 추석을 앞두고 구상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부처 장관 8명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명절 물가안정대책 중 하나다.

대통령의 지시로 7월부터 야심 차게 시작한 물가관계장관회의가 이날로 4회째를 맞았지만 회의에서 제시된 대책들은 대체로 ‘이 선’을 넘지 않는다. 이날 회의에서 장관들은 태풍 ‘무이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작물 응급 복구, 현장전문가 파견, 기술지원단 운영 등 농림수산식품부가 ‘알아서 잘 추진할’ 대책을 쏟아냈다. 중국산 배추 500t 수입, 추석 대비 조생종 사과 비축 등 상식선에서 해결할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통신요금 인하대책이라며 발표한 선택형 스마트폰 요금제 출시, 선불요금제 활성화 방안 마련 등은 사실 7월까지 확정짓겠다고 한 약속들이다.

물가장관회의에서 이렇다 할 물가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주 회의에서 외식비 안정을 위해 물가안정 모범업소에 대출금리를 0.25%포인트까지 감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착한 가게’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출금리 0.25%포인트를 우대받겠다고 값을 내릴 가게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담합해 값을 올린 업체가 자진해 가격을 내리면 과징금을 깎아주는 조치나 자장면, 김치찌개 등 10대 서민물가를 16개 시도별로 비교하는 ‘2차 MB물가’ 작성이 서민물가 안정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대통령이 물가를 잡으라고 불호령을 내린 지난달과 미국 및 유럽의 재정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진 현재의 경제환경은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다. 서민물가 안정은 현 정부가 제시한 핵심 경제시책 중 하나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우려되지만 미국이 향후 2년간 제로금리를 선언하면서 신흥국에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측면도 있다. 정부도 이 점을 감안해 물가안정에 더 주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변히 내놓을 아이디어가 없는데도 무조건 ‘매주 1회’ 물가대책회의를 의무적으로 여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에게는 매주 알맹이 없는 회의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일 수 있다.

이상훈 경제부 janua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