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수들은 대학 안팎에서 지금껏 유례를 찾을 수 없었던 거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국·공립대 성과급적 연봉제 시행 예고에 따른 무한경쟁 시대로의 돌입이다. 성과급적 연봉제란 매년 각 교수의 연구 교육 봉사 실적을 정량적으로 평가해 그 평가치를 다음 해 연봉, 궁극적으로는 퇴직 후의 연금에까지 반영하는 제도이다. 유사한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일반 기업의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제도가 오늘의 한국 대학가에서 거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교육이 정량적 평가의 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기르고 변화시키는 교육에 대해 정량적 평가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제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요, 불완전한 평가방법으로 인해 교수의 교육능력 평가 결과가 엇비슷해진다면 교수들은 점수 따기에 용이한 연구실적 쌓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대학의 미래는, 교수가 점수 변별력이 크지 않은 강의를 소홀히 하고 점수와 관계없는 학생지도 활동을 외면함으로써 발생하는 교육의 총체적 부실화이다. 대학의 발전적인 경쟁풍토 조성이니, 교수의 연구·교육 역량 강화니 운운하면서 성과급적 연봉제를 졸속 시행하기 전에 공정성과 합리성을 담보한 평가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물론 대학교육의 질은 혁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교수가 학생을 잘 가르치는지도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현재로서는 강의평가 제도가 그나마 학생의 교육만족도를 가장 합리적으로 정량화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다. 세간의 오해처럼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을수록 강의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것도 아니고, 교수가 부과하는 학습량이 많다고 해서 강의평가 점수가 낮은 것도 아니다.
강의평가와 관련한 다수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수의 인간성, 친절과 유머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평가를 할 때에는 교수의 강의준비 상태, 강의의 진행구조, 동기유발 능력, 질의응답 내용,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인격적 존중을 평가의 척도로 삼는다. 학생들은 강의를 통해 얻은 지식의 양이 많다고 느낄수록 강의를 높이 평가한다. 현재 수준에서 강의평가의 유효성과 신뢰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평가 결과를 교수의 강의개선 자료로 사용하는 경우와 업적평가에 사용하는 경우로 구분해 분석해야 한다. 양쪽이 중복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같은 항목이라도 강의개선을 위한 분석과 업적평가를 위한 분석은 접근방법부터 다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대학별로 시행 중인 강의평가 시스템을 단계별로 표준화하고 그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대학 간 네트워크를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강의평가 결과가 교수의 교육 역량을 100% 말해줄까? 대학 교육이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질까? 대학 시절에 필자는 전공인 화학공학 공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당연히 화학공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랬던 필자가 화학공학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결국 교수의 길로 들어선 것은, 강의실 밖에서 들은 교수님의 따스한 조언과 한마디의 격려 덕분이었다. 학생들을 향한 이런 조언과 격려도 정량화해 평가할 수 있을까? 최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평가 만능주의의 함정 또한 부단히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가’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도구는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그렇지만 기껏 벼린 서슬로 학생과 인격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교수의 마음을 잘라내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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