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육군 베레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8일 20시 00분


베레(b´eret)는 프랑스어다. 베레는 본래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피레네 산맥의 양치기들이 쓰던 모자였다. 산악지대의 추운 바람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주는 실용적인 모자였다. 이 모자를 주로 쓰는 바스크족은 검은 베레를 선호한다. 지금도 유럽 도시에서 바스크 국기를 내건 식당에 들어가면 베레모를 쓰고 서빙하는 바스크족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베레모는 후에 멋쟁이들의 패션 아이템이 됐다. 오늘날의 스타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던 19세기 후반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베레모를 쓴 초상이 유명하다. 1968년 미국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 ‘보니 앤드 클라이드’)에서 여주인공 보니 역을 맡은 페이 더너웨이가 중간 길이 스커트에 베레모를 쓰고 나와 이른바 ‘보니룩(bonnie look)’을 유행시켰다. 붉은 별이 그려진 검은 베레모를 쓴 쿠바의 혁명운동가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1960년대 남미 혁명운동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영미권 군대에서는 ‘그린 베레(green beret)’가 특수부대의 상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특수훈련 과정을 마친 영국군이 녹색 베레모를 착용해 ‘그린베레’로 불렸다. 영국군과 함께 작전을 벌이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영국군을 보고 부러웠던지 군 당국의 금지 규정을 어겨가며 베레모를 쓰기 시작했다. 미군의 베레모 착용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뒤늦게 추인을 받았다. 우리나라 특전사는 ‘검은 베레’, 유엔평화유지군은 ‘블루 베레’를 착용한다.

▷육군 전체 52만 명이 올해 국군의 날(10월 1일)부터 전투모 대신 베레모를 쓸 예정이었으나 모자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차질을 빚고 있다. 주먹구구식 납품 계약 때문에 40만 개 이상 베레모의 납기를 맞추지 못할 상황이다. 군 당국의 일처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육군은 지난해 말 “강인한 이미지를 주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야구모자 모양의 기존 전투모 대신 베레모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전사의 검은 베레와 구별하기 위해 색깔은 흑록색으로 정해졌다. 모자만 바뀔 것이 아니라 육군 전체의 전투력이 특전사 수준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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