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기관 허락 없이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술품 정보가 공개되면 보험회사에서 미술품에 대한 보험을 가입하라고 기관에 전화가 많이 와서 안 됩니다.”
국가기관에서 보유한 미술품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조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조달청은 정부 각 기관으로부터 매년 미술품 증감 명세를 보고받지만 이런 이유를 대면서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달 말부터 정부 미술품의 증감 현황과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을 취재하기 위해 청와대를 비롯해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20개 정부기관에 미술품 관리대장 등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미술품의 구입 과정과 보관 및 관리가 허술하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하지만 많은 부처는 갖은 핑계를 대며 정보공개를 꺼렸다.
부처별로 같은 자료를 요청해도 자료를 주는 것은 담당자 마음대로였다. 18개 기관 모두 미술품 관리대장을 공개했지만 청와대는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전체 미술품의 수량만 공개했다. 특정인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국방부는 ‘자료 부족’이라는 이유로 20일이 가깝도록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가 요구한 자료는 조달청 규정에 따라 평소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문서다. 결국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걸 국방부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기한 내에만 처리하면 된다는 식으로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태도도 불쾌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10일 내로 결과를 통보하게 돼 있어 중간에 전화를 걸어 독촉했지만 대부분 마지막 날에서야 자료를 줬다.
통일된 지침이 없어서 기관마다 법령 해석도 제각각이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에는 ‘비영리의 학술·공익단체 또는 법인이 학술이나 연구목적 또는 행정감시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청구한 경우’가 수수료 면제 사유로 돼 있지만, 18개 기관은 수수료를 받지 않았고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등 2개 기관은 수수료를 내도록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언론사는 판매를 하므로 비영리기관이 아니며 수수료 부과는 자체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2개 기관의 수수료는 각각 300원, 200원에 불과했지만 그렇다면 나머지 기관은 왜 수수료를 면제해 줬을까 의문이 들었다.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뒤 정보공개 청구는 행정감시의 중요 수단이 됐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무원들의 태도 때문에 정보공개 청구가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국민들이 정보공개 청구 제도가 별 효과가 없다고 느끼는 걸 보면서 오히려 공무원들은 쾌재를 부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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