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상근]‘형·부’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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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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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부사(副詞)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문장에 있어선 미덕이 된다.(이태준, ‘문장강화’)

이태준은 ‘없어도 좋을 말’의 예로 형용사와 부사를 들었다. 동서양의 글쓰기 고수들이 두 품사를 멀리하려는 이유는 명사와 동사를 단정적으로 묘사하거나 과장할 가능성이 높아서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형용사-부사 잘못쓰면 왜곡 생겨

형용사와 부사를 잘못 쓰면 자기주장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곡과 거짓이 생길 수 있다. 화장과 조명이 민얼굴을 가리는 일과 비슷하다. 여기에 선전선동, 독선, 집단 광기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몇 가지 글을 따져 보자.

①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설치 의도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려는 미국의 군사적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해명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우리와 상관없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정책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제주 강정이 희생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명박 정부는 강정 해군기지 설치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 아래 10일 나온 기자회견문이다. 우리와 상관없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정책? 전교조 집행부는 같은 조합원인 사회나 역사 교사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미중 두 나라의 움직임이 한국과 상관없는지.

②이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강정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하는 과정과 절차가 너무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 주교가 교회 내 언론 매체에 보낸 글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에도 12일 올라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강정마을회의 유치 희망 의결(2007년 4월) 도민과 현지 주민의 찬성 여론조사(2007년 5월) 반대단체와 공동 생태계 조사(2009년 2, 6월) 제주도 의회의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2009년 12월) 국방 군사시설 실시계획 적법 판결(2010년 3월과 2011년 6월)….

과연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인가. 주민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나. 주교회의 의장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밝힌 생각이라 읽기가 불편하다.

③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민주당 주장)

선거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다. 이를 행사하는 투표에 나쁘다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쁜 기부, 좋은 살인처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조갑제 기자는 이 점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비판했다.

‘나쁜 투표’표현 논리에 안맞아

‘모든 투표는 편을 가른다. 승자와 패자로. 정책의 찬반을 건 모든 투표는 선택을 위한 것이며 결과에 대한 승복을 전제로 한다…민주주의는 투표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표는 신성하다. 기독교에서 예배가 신성하듯이. 나쁜 투표, 나쁜 예배는 없다.’

스티븐 킹은 화려하게 치장한 낱말을 야외복을 입은 애완동물에 비유했다. 이태준은 민중을 독자로 하는 논설문의 조건을 “확호(確乎)한 실례를 들어 의심을 살 여지없이 신임을 받아야 하고…중언부언이 없을 것”이라고 정리했다.

형부(형용사+부사)가 말하는 세상보다는 명동(명사+동사)이 보여주는 세상이 정직하지 않을까. 전교조, 주교회의 의장, 민주당의 글을 읽고 아쉬움을 느꼈다.

(덧붙이는 말―오늘 얘기는 필자를 포함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확한 표현으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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