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稅制 개편, 기업 경쟁력과 재정 다 감안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0일 03시 00분


다음 달 정기국회를 앞두고 정치권과 정부 사이에 세제(稅制)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내년 시행 예정인 소득세와 법인세율 인하를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아예 ‘부자(富者) 감세’라고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임종룡 기획재정부 차관은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낮춘다는 정부 방침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2%포인트씩 낮췄지만 과세표준 8800만 원 이상인 개인 소득세와 과표 2억 원 이상 기업 법인세율 인하는 시행 시기를 2012년으로 2년 늦췄다.

정부가 이미 발표하고 한 번 유예한 세금 인하를 백지화하면 국내외 기업과 투자자에게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불확실성을 키운다. 다만 글로벌 재정위기로 세수(稅收) 확충과 정부 지출 억제로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새 변수가 생긴 만큼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를 유보하는 문제는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법인세율 인하까지 없던 일로 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클 것이다.

각국은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외국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추고 있다. 대만은 25%였던 법인세율을 지난해 17%로 8%포인트나 인하했다. 싱가포르도 18%에서 17%로 조정했다.

법인세 부담을 줄여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면 주주 근로자 소비자 거래 기업에 혜택이 두루 돌아간다. 과표 2억 원 이상 기업 중 94.8%가 중소기업, 2.7%가 중견기업인 반면 대기업 비율은 2.5%에 그친다. 법인세율 인하를 ‘부자 감세’ ‘재벌 감세’로 몰아붙이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정치 공세다. 법인세는 약속대로 낮추고, 30년이나 이어진 기업의 임시투자세액 공제를 철폐해 세수를 보완하는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계도 법인세율 인하와 임시투자세액 공제 유지를 모두 요구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백용호 대통령정책실장은 그제 “중소기업의 가업(家業) 승계 때 고용을 일정기간 유지하는 조건으로 상속세를 대폭 감면하는 ‘독일식 상속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실질적 상속세율이 기업인의 경영 의지를 꺾고 회사 규모를 키우는 것을 막는 측면이 있다. 일부 기업인의 탈세행위는 엄벌하되, 국제 수준에 맞게 상속세 제도를 보완해 기업인의 가업 승계를 촉진해야 한다. 기업 경쟁력과 재정 건전성을 함께 감안하는 세금정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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