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한국의 항공안전등급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내려 국제신인도가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뒤 안전등급을 내릴 때까지 2년 이상 걸렸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못 챙긴 건 그 기간에 건설교통부의 장관과 담당 국장이 5명씩이나 바뀐 탓이 컸다. 최종찬 전 장관은 “장관 첫해는 전임자가 편성한 예산을 그대로 집행하고 자신이 1년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정책은 3년차에 집행하게 된다”면서 “1년 만에 그만두면 전임자가 편성한 예산을 집행하다 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장관 평균 재임기간은 1년 반 정도로 짧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는 장관이 수두룩하다. 장관 평균 재임기간은 김대중 정부가 10.6개월로 가장 짧았고 김영삼 정부는 11.6개월, 노무현 정부는 14개월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각각 18.3개월과 13.7개월이었다. 국가백년대계를 다루는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도 고작 1년 2개월에 그쳤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국회 출신 장관들은 9월 정기국회 이전에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후임자 인사청문회까지 고려하면 이재오 특임장관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임 기간이 1년을 겨우 넘고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8개월짜리 단명(短命) 장관이 된다. 동아일보는 정 장관의 인사청문회 이틀 뒤인 올해 1월 19일자 사설에서 “정 후보자가 다음 총선에 출마한다면 10개월짜리 장관이 될 수도 있다”며 “총선에 출마한다면 마음이 콩밭(선거 판)에 가 있어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끝내 총선 불출마를 약속하지 않아 단명이 예고됐지만 10개월에서 2개월이나 더 줄어들 판이다.
▷정 장관은 청문회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화부 장관은 박지원 전 장관”이라며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에게 아부했다. 그가 박 의원에게 90도 가까이 허리를 굽히는 굴신의 대가로 쓴 감투는 결국 총선 출마를 위한 경력 관리용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민심수습용이나 국면전환용 개각도 문제지만 정치인 경력 관리용 장관 임명은 사라져야 할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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