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한일관계 ‘담대한 계산’으로 풀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3일 03시 00분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리먼 쇼크, 동일본 대지진, 구미의 금융불안,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엔화 가치 급등으로 일본 기업이 생산과 개발거점을 한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도레이가 최첨단 탄소섬유공장을 경북 구미시에 짓기 시작했고 JX닛코닛세키에너지가 석유화학제품공장을 울산에 짓기로 했다. 도쿄일렉트론의 반도체 연구개발거점이 경기 화성시에 완공됐고 스미토모화학의 터치패널 평택공장도 생산을 시작했다.

일본 기업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기업경쟁력 유지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다. ‘부메랑 효과’를 우려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도레이가 ‘비장의 무기’인 탄소섬유공장을 한국에 건설한 것을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엔화 가치 급등, 높은 법인세율, 전력 부족,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지부진, 노동규제, 환경제약 등 일본 기업의 6중고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같은 탈(脫)일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일본 기업은 한국으로 향하는 걸까. 인천공항이나 부산항의 물류거점화 같은 한국의 ‘허브화 전략’이 맞아떨어졌고 그 효과가 생산과 개발 분야로 파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에는 삼성전자 등 유력 고객도 있다.

생산 및 개발거점의 한국 이전뿐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일(韓日)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파트너로 협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가 최근 LG전자와 함께 ‘물 사업’ 관련 합병회사를 설립하고 미쓰비시상사가 한국가스공사와 천연가스 분야에서 제휴를 확대하고 있다. 한일 기술 수준이 비슷해지면서 적절한 협력이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양국 기업이 ‘담대한 계산’에 의한 경쟁과 협력의 새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때 일부 정치인은 ‘소심한 계산’으로 한일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한국 국회의원의 북방영토 방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일본 자민당 보수파 의원 3명이 울릉도를 방문하려고 했다. 한국 정부가 김포공항에서 입국을 거부하는 바람에 이들은 양국 간에 영토분쟁이 존재함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현재 한일 관계의 최대 테마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이다. 올해 안에 방문이 이뤄지지 못하면 내년에는 한국에서 대선을 포함한 정치 일정이 산적해 있어 사실상 국빈방문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뿐인가.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한일관계는 급속히 험악해질 수 있다. 자민당 의원 3명은 한일관계의 전체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 ‘소심한 계산’이 한일관계의 전체를 혼란시키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싫어하는 한국 내 급진세력의 목소리를 키워줄 수 있음을 모르고 있다.

한국 측도 ‘소심한 계산’으로 대응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여러 유력 신문이 주장한 것처럼 일본 의원 방문을 문제화할 필요는 없었다. 울릉도에서 한국의 주장을 정중하게 설명하고 ‘독도유람’에 초대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한국을 거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영해에 들어가면 3명의 의원은 그것이 한국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두 나라의 ‘소심한 계산’에는 실망했지만 이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독도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성숙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했고 “일본이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주문함으로써 큰 방향성을 제시했다. 또 다케시마 소동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인내심 있게 공식방문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야말로 ‘담대한 계산’이다. 누가 일본의 새로운 총리가 되더라도 우선 한국을 방문해 대통령에게 공식 방일을 요청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한일관계’를 위한 첫발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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