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광규]무상급식 투표와 오버랩 되는 1948년 ‘5·10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3일 03시 00분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 소장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 소장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올해 8월 15일은 일제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광복절 66주년이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수립된 대한민국 건국 6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금 서울에서는 무상급식 지원 범위를 둘러싸고 서울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가 발의돼 24일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이번 투표를 통해 선거권을 가진 서울시민은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 안(案)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무상급식 실시’ 안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둘 중 어느 안을 선택할지와는 상관없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일부에서 ‘주민투표 불참운동’을 전개하고 어떤 국회의원은 이번 주민투표를 유신 찬반 투표와 비교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적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투표 참여를 막는 행위는 오히려 1948년 제헌국회 성립을 위해 실시되었던 ‘5·10선거 반대’와 오버랩 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만약 63년 전 당시 ‘5·10선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자유 투표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1948년 3월 안으로 한반도에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된 독립정부를 수립한 후 90일 이내에 미소 양군이 철수한다는 결의안을 ‘46 대 0’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은 이 같은 유엔의 결정에 반대하고 선거관리를 위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38선 이북으로의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남한에서만 5월 10일 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선거를 통해 유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 국민은 자유 투표권을 갖게 되었고 전체 등록 유권자 중 95.5%가 참여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제헌국회의원을 선출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일부 남북협상파는 분단이 영구화된다는 이유로 통일선거를 해야 한다며 선거를 보이콧했다. 이들의 소원대로 남북한을 통한 선거가 진행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련과 북한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한에서만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이미 1946년 2월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조직돼 ‘사실상의 정부’가 남한보다 먼저 수립되었던 상태라 남북을 대표하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당시 지하 남로당을 비롯해 소련과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좌익세력들은 선거 보이콧을 넘어 파업과 폭력, 살해 등의 파괴행동을 통해 일반 국민의 선거 참여를 방해했다. 이 때문에 실제 제주도에서는 선거가 정상적으로 실시되지 못했다.

주지하듯이 자유 투표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권리로 20세기 초반에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반 시민들도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이번 주민투표 사안에 대한 의견이 다르고 아무리 당리당략과 정치적 이해득실을 우선시한다고 해도 자유 투표를 막는 행동만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전면 무상급식이든, 단계적 무상급식이든 투표에 참여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투표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 무상급식을 지지한다면 선거 참여를 막는 선전 선동을 하기보다는 이를 위한 선거 참여 운동을 하는 것이 상식과 순리, 민주주의 기본에 맞는 행동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도착지로 정해 출항의 닻을 올렸던 1948년 ‘5·10선거’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24일 실시되는 주민투표에 적극 참여하고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에 승복하는 민주 서울시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 소장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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