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1년마다 폐기 처분되는 일본 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한국인 여러분, 현재 일본 총리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정답은 간 나오토 씨입니다. 취임한 지 1개월 반이 지났지만 다행히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7월 필자가 첫 번째로 쓴 도쿄소고의 도입부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국인 여러분, 1주일 후 일본 총리가 누구일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일본 사람도 알 수 없으니까요.”

간 총리도 취임 1년 2개월여 만에 자리를 떠나게 됐다. 간 총리는 조만간 사임을 공식 표명하고 이달 말 민주당 대표선거를 거쳐 새 총리가 선출된다. 5년간 6번째의 총리가 탄생하는 셈이다.

예전에 총리를 지낸 다케시타 노보루 씨가 “가수는 1년, 총리는 2년 만에 폐기처분”이라며 한탄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총리도 1년’이 돼버렸다. 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복구는 이제야 겨우 실마리를 찾았을 뿐이다. 원전 사고 수습에는 여전히 더 많은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고, 피해는 아직도 확산되는 중이다. 국제사회는 구미의 심각한 경제·재정위기로 전전긍긍하고, 일본은 사상 초유의 엔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수장이 또 교체되는 것이다.

지난달 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후지 산을 배경으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나란히 기모노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표지 타이틀은 ‘터닝 저패니스(Turning Japanese)’. 경제위기에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두 리더를 “일본인처럼 되고 있다”며 경종을 울린 것이다.

5년간 6번째 총리 탄생

일본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국가채무를 방치해왔다. 계속되는 리더 부재로 정치는 마비됐다. ‘일본인처럼’이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급등하는 엔화 가치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언제 엔화의 대폭락이 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외교적으로도 실례다. 간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과 중국 원자바오 총리를 초대해 대지진 피해가 생생한 현장을 찾은 게 불과 5월이었다. 다음 달 일본 총리를 미국에 초대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국빈 자격으로 올가을 방일을 검토 중인 이 대통령은 대화 파트너가 누구인지 몰라 계획을 실행할 방도가 없다. 어렵사리 결정된 조선왕실의궤의 한국 반환도 언제 인도식이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 번이나 중국을 방문했고, 이제는 러시아까지 방문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이었던 건강문제는 어디로 갔는지, 일본의 단명 총리를 비웃듯 독재정권은 장수하고 있다. 미국의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부주석과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 내년 주석이 되면 앞으로 10년은 권좌에 머물 상대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하지만 최소한 4년의 임기를 채운다. 일본만 뒤처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역사적 정권교체가 실현된 것은 겨우 2년 전이다. 총선 승리의 축배에 취한 민주당은 하토야마 유키오 씨가 대표를, 오자와 이치로 씨와 간 씨가 각각 대표대행을 맡는 초호화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 이렇게 태어난 하토야마 정권은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 간 부총리 외에도 당 대표까지 지낸 오카다 가쓰야, 마에하라 세이지 씨를 각각 각료로 캐스팅했다. 이른바 민주당의 올스타 정권이었다.

그로부터 2년. 트로이카는 무참하게 무너졌다. 하토야마 씨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이전문제로 자멸했다. 오자와 씨는 정치자금 의혹으로 기소돼 당원 자격마저 정지됐다. 1년 전 대표선거에서 오자와 씨를 이긴 간 씨는 오자와, 하토야마 두 사람에 의해 끝까지 발목을 붙잡혀 끌려 다녔고, 관료들을 능숙히 다루지 못해 스스로 목을 조였다. 민주당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럼 이제 누가 총리가 될 것인가. 국민이 잔뜩 맥이 빠진 와중에 인기 있는 마에하라 씨가 손을 들고 나섰다.

“누가 되든 2년은 했으면…”

이에 앞서 본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마에하라 씨는 외상 재임 중이던 3월, 재일한국인으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직했다. 비운이었지만 민주당 대표 시절에도 날조된 증거를 가지고 자민당의 스캔들을 추궁했다가 제 무덤을 판 적이 있다. 얼굴도 잘생기고 말도 시원시원한 게 인기 비결이긴 해도 빈틈이 있는 게 걱정스럽다.

외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미파. 영토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에는 강경파지만 역사인식은 양심적이어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의욕적이다. 49세의 마에하라 씨가 이기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젊은 일본 총리가 탄생한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누가 되든 이번만큼은 2년은 했으면 좋겠다’며 나도 모르게 너무나 소박한 소망을 하는 모습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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