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마인호프 콤플렉스’라는 독일 영화가 있다. 1970년대 독일 사회를 뒤흔든 극좌 테러조직 적군파(RAF)를 다룬 2008년 영화다. 영화는 1967년 서베를린에서 팔레비 이란 국왕 방문 항의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젊은이가 당시 26세의 베를린자유대 학생 베노 오네조르크다.
그 이름을 다시 접한 것은 이듬해인 2009년이다. 오네조르크가 죽은 지 42년이 지나 총을 쏜 서독 경찰관 카를하인츠 쿠라스가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첩자였던 사실이 슈타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서독 곳곳에 침투한 동독 간첩
동독 간첩의 총 한 방은 역사의 물꼬를 바꿔놓았다. ‘우파정부의 주구(走狗)인 경찰이 죄 없는 학생을 죽였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과격한 조직이 안드레아스 바더라는 청년과 울리케 마인호프라는 여기자가 만든 적군파였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1967년부터의 독일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 간첩이 서독 곳곳에 침투한 사실은 ‘연방 슈타지 문서보관소’가 1990년 통독후 슈타지 문서를 조사한 후에야 밝혀졌다. 슈타지는 서독에 3만여 명의 고정 간첩을 두고 국회의원 각료 정보기관원은 물론 의원보좌관과 대학생까지 포섭했다. 1973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수행비서 귄터 기욤이 슈타지 요원으로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검찰은 그제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왕재산 서울지역책 이모 씨는 민주당 소속의 임채정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지내며 정치권 정보를 수입해 북한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에도 수사대상자가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사회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진지하게 말해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라. 가물가물할 것이다. 간첩단 사건은 1999년 ‘주사파 대부’ 김영환이 연루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 황인오의 동생으로 역시 간첩죄 선고를 받은 황인욱은 비슷한 해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녀 개인적으로 잊어버릴 수 없다. 1996년 강릉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을 취재하러 다닐 때 만난 등명낙가사 주지 스님의 증언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는 “잠수함이 좌초한 지점 해안 절벽에서 한밤중 바다 쪽으로 전조등을 비춰주던 자동차를 봤다”며 “고정간첩이 한 짓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1997년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씨가 간첩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살해된 후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생전의 이 씨와 통화를 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통화기록이 남아 경찰이 탐문수사 차원에서 전화를 해온 것이다.
창작속에 미화되고 희화화된 간첩
1999년은 영화 ‘쉬리’와 ‘간첩 리철진’이 나온 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간첩(정확히는 간첩수사)만 사라진 게 아니라 간첩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간첩은 ‘쉬리’의 ‘이방희’(김윤진 분)처럼 아름답거나 ‘리철진(유오성 분)’처럼 우스꽝스러워졌다. 문학에서 간첩은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됐다. 2006년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에서 평양외국어대 영어과 출신 주인공 김기영은 1984년 남파된 이후 민족해방(NL)계 운동권 여학생과 결혼해 영화수입업자를 하며 여느 386세대와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편안해진 간첩의 이미지는 안방까지 들어왔다. 현재 방영되는 TV 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여간첩 한명월(한예슬 분)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창작은 자유다. 그럼에도 미화되고 희화화된 간첩의 이미지는 현실의 간첩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창작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도록 환기시키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이 국정원이고 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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