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대화]노래 가사 심의 이대로 안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25일은 최근 논란인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과 관련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자사 그룹 ‘에스엠 더 발라드’의 노래 ‘내일은…’이 술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만으로 유해 판정을 받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해 사실상의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동안 꾸준히 지적됐던 기준 적용의 경직성에 법원이 철퇴를 가한 것이다. 재판부는 “곡에 포함된 (술에 관한) 표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일 뿐 술의 효능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거나 음주를 권장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면서 맥락에 따라 유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기계적으로 유해 판정을 한 것에 경종을 울렸다. 둘째, 이미 유해 판정을 받은 가수들이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긍정적 판례를 확보한 것이다.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여성가족부를 압박하는 것과 판결을 통해 선례를 만든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벌써부터 줄소송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부의 최근 음악 심의는 심각할 정도로 억측이 난무했다. 가장 심했던 것은 술 등의 유해약물과 관련된 부분으로 술이나 담배라는 말만 들어가면 정황적 판단 없이 무차별적으로 유해로 판정했다.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10cm의 ‘아메리카노’ 등 청소년 보호를 위한 심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마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기계적이고 보수적인 판정이 쏟아져 나왔다. 비판이 일자 일관성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문제되지 않던 곡들까지 뒤늦게 부랴부랴 끼워 맞추기 식으로 심사하는 촌극을 벌였다. 술이 특히 문제가 되자 ‘취중진담’과 ‘술이야’를 다 같이 유해매체로 판정한 것은 신경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도 그동안 여성부의 음악 심의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우선 음악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데도 문화의 논리가 배제된 채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이를 심의하는 절차가 해괴하다. 심의와 관련된 깊은 상처의 역사를 겪고도 여전히 관 주도로 심사가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박정희 정권 아래 수많은 청년문화의 기수들이 ‘퇴폐’로 낙인 찍혔던 과거가 이리도 빨리 잊힌단 말인가. 게다가 여전히 국가가 법률에 근거해 권위적으로 음악을 심의하는 곳은 한국 중국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미국과 일본은 모두 국가가 아니라 음악산업 내부에서 스스로 심의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국회 입법조사처가 “장기적으로는 민간 자율심의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최근엔 심사위원의 종교적 편향까지 문제되고 있다. 음반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인중 라이트하우스 대표가 썼던 글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그는 한 기고문에서 “모든 문화예술 행위는 반드시 성경(기독교)의 잣대로 심판된다는 것이다”라는 지극히 종교적인 문화론을 펼쳤다. 레이디 가가를 비판하는 다른 글에서는 한 술 더 떠 “대중문화(음악)가 던져주는 달콤한 즐거움 속에서 사단의 미혹(독)을 읽어내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편향을 확인하면 판정에 대한 신뢰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심의는 가수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힐뿐더러 사회적 낙인까지 찍는 행위일 수 있어 최소한으로만, 만약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도 기준의 모호함은 기본이요, 심의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각종 논란에 시달리고 있으니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유해 판정은 큰 규모의 수술대 위에 올려져야 마땅하다.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될 때까지 변화하고 고쳐야 한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그 첫걸음의 법적 응원이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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