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의 꽃’은 100m 달리기일까, 마라톤일까. 찰나의 순발력과 폭발적인 힘, 절제된 끈기와 인내력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히 대조적인 종목이라 갑론을박이 있다. 그러나 ‘스포츠 시장’은 100m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세계 최대의 육상 시장인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남자 100m이고, 2012년 런던 올림픽 경기관람권 중 가장 비싼 표도 남자 100m 결승전(약 130만 원)이다. ‘볼거리’에서도 100m 선수가 딱 벌어진 골격과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데 비해 마라톤 선수는 왜소해 보인다.
▷이런 체형 차이는 속근(速筋)과 지근(遲筋)의 비율에서 비롯된다. 100m 선수는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내는 속근, 마라톤 선수는 반응속도는 느려도 지구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한 지근이 발달했다. 100m 선수가 우람한 것은 근육의 부피가 큰 속근을 집중적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대개 흑인종은 속근, 백인종은 지근이 좋다. 흑인은 허벅지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근육도 탄탄하다. 1983년 시작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백인이나 아시아인은 한 번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백인의 최고기록은 크리스토프 르메트르(프랑스)의 9초92로 200위권 밖에 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번개’ 우사인 볼트가 부정 출발로 실격했다. 요한 블레이크는 9초92의 평범한 기록으로 우승했다. 볼트의 라이벌 아사파 파월과 타이슨 게이도 함께 뛰지 못했다. 볼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승리를 확신한 80m 지점부터 스퍼트를 늦추고 세리머니를 하며 여유를 부리고도 9초69가 나왔다. 최대 약점인 출발반응 속도를 개선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독하게 달린다면 또 한번 큰일을 내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볼트 스스로도 9초40대가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전문가들은 출발반응 속도가 뛰어난 킴 콜린스가 10m까지, 초반 파워가 독보적인 모리스 그린이 30m까지, 뒷심 좋은 볼트가 나머지를 뛰면 이론적으로 9초35에 100m를 주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옛 소련 과학자들은 9초34를 한계점으로 봤다. 신은 인간에게만 튼튼한 심장, 정교한 체온조절능력, 스프링 역할을 하는 아킬레스힘줄을 줬다. 인간에게 질주는 본능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