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그저 ‘사과’이던 시절이 좋았다며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애플이 가져온 세상 변화가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게다. 스마트폰 알람을 듣고 일어나 날씨와 뉴스를 검색하고 영상통화를 하며 카카오톡으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스티브 잡스라는 불세출의 기인(奇人)이 만들어놓은 변화가 새삼 경이롭다. 전깃불이나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또는 비키니 수영복이 첫선을 보였을 때도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었을까.
품성과 업적의 불일치 보여줘
잡스는 연애는 하고 싶을지언정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캐릭터다. 결혼 상대론 억만장자이자 품성도 좋아 보이는 빌 게이츠가 제격이다. 잡스와 게이츠는 1955년 동갑내기이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윈도OS로 거액을 벌어들인 게이츠는 진즉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에서 물러나 지금은 기부활동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잡스는 최근 은퇴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신제품을 발표했다. ‘어떻게 어른을 골탕 먹일까’하고 머리를 굴리는 악동처럼 잡스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까’를 궁리하는 영원한 청년의 이미지를, 게이츠는 멋진 중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잡스가 출간을 막으려고 했다는 책 ‘아이콘’을 보면 확실히 그의 인간성엔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는 어렸을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세가 있었고 품행이 불량했다. 숙제는 손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폭발물을 터뜨리거나 뱀을 풀어놓아 선생님을 질겁하게 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중학교로 건너뛰었을까. 고등학교 시절에는 체육코치가 안 보는 틈을 타서 다른 학생들이 운동장을 뛸 때 살짝 앉아 있다가 학생들이 근처로 왔을 때 일어나 끼어드는 얌체였다. 한마디로 싹수가 노랬다.
그는 여자친구가 임신하자 헌신짝처럼 버렸고 딸을 낳자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우겼다. 장애인주차구역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차하고 사업이건 연애건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 했다. 식당종업원을 하인 부리듯 했고 좀체 지갑을 열지 않아 밥값은 늘 동료나 부하직원이 냈다. 자신의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인도에 심취해 1년이나 인도를 여행하는 히피기질도 있었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열광시키고 비즈니스 생태계를 바꾸는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냈다. 미란다원칙의 계기가 된 미란다가 천하의 몹쓸 놈이었어도 피의자권리 옹호에 기여한 것을 연상한다면 심한 연상일까.
뼛속까지 반골(反骨)인 잡스는 대중을 불신했으며 엘리트를 선호했다. 초창기 애플사에 있을 때도 매킨토시팀만 특별대우를 했다. “해적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팀원들에게 이 말이 적힌 티셔츠를 입혔다. 그러면서 “주 90시간 즐기면서 일하자”고 요구했다. 주 90시간이면 일요일 빼고 하루 15시간이다. 뉴욕타임스는 올 1월 “인터넷시대의 성공법칙은 집단지성과 오픈이노베이션이지만 잡스의 철저한 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가 통했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집단지성과 열린 혁신이 성공의 유일법칙은 아닌 것이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지만 다수가 항상 옳지는 않다. 오히려 세상은 규범을 깨뜨리고 관행을 무시하며 시류(時流)를 거부하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진보한 사례가 많다. 민주적인 구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잡스가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성공법칙 깨버린 異端의 대성공
공부와는 담 쌓고 거짓말을 일삼고 컴퓨터만 파고 있는 아들을 둔 부모들은 포기하지 말고 “내가 잡스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 정말 위대한 인물이 될지, 그와는 한참 반대일지, 그건 물론 모른다. 어차피 인간이 만드는 세계는 모순투성이고, 반전(反轉)이 있는 게 재미라면 재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