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철수 현상’ 어디까지 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이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함께 전국을 돌며 펼치는 대담 강연 ‘청춘콘서트’는 젊은 청중으로 만원사례다. 한 취업포털이 지난달 남녀 직장인 7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장으로 모시고 싶은 인물로 안 교수가 압도적 1위(45.9%)를 차지했다.

‘안철수 현상’이 그를 서울시장 유력 예비후보로까지 급부상시켰다. 어제 안 교수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결심했다는 단계는 전혀 아니다. 결심이 서면 직접 말하겠다”면서도 “시장은 바꿀 수 있는 게 많다”고 여운을 남겼다. 서울시장 보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은 반응이다.

안 교수는 1995년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안철수연구소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다가 10년 만에 CEO직에서 떠났다. 그는 “CEO 한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크면 회사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직원이 300명에 불과한 회사에서 경영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으로 그만뒀다는 후문도 있었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세계적 정보기술(IT)기업으로 도약하는 동안 안철수연구소는 안방 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는 반론도 있다. 안 교수와 함께 국내 벤처 1세대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회장은 “다들 애플 앞에서 쓰러져갈 때 그나마 고개 들고 버티고 있는 게 삼성밖에 더 있나”라며 “대기업 욕을 하면 의식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진단했다.

세계적 대기업의 씨를 뿌리고 엄청난 일자리와 국민 먹거리를 창출한 이병철 정주영보다 더 ‘필요한 CEO’로도 뽑혔던 적이 있는 안 교수는 실은 경영다운 경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비판도 받는다. 안철수연구소는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업체에 들어 있지 않다.

안 교수는 공동저서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서 서울대 의대 졸업, 20대 의학박사와 의대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도전과 변신을 통해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꿈과 미래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안 교수를 서울시장 후보군에 올려놓는 데도 기여했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에는 다소간 거품이 끼어 있다는 시각이 엄존한다.

서울시는 본청 공무원이 1만 명, 한 해 예산만 20조 원이 넘는 거대 조직이다. 국방과 외교 분야를 제외한 정부 부처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감성(感性)으로 수도 시정(市政)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지, ‘안철수 현상’을 서울시민이 심판할 기회가 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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