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시고, 쏘세요!” 복권 하면 떠오르는 친근한 목소리로 ‘내 집 마련’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었다. 1969년 서민주택 건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 복권사업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는가 싶더니 최근 논란으로 시끄럽다. 7월 1일부터 판매된 연금복권 때문이다. 이 복권은 1등 당첨금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대신 20년간 매달 500만 원씩 연금식으로 지급하는 형태다. 일확천금의 당첨금을 기대하는 데서 비롯된 사행심을 억제하고 복권 당첨 이후 안정된 생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취지로 인해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전되는 요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어 매진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인기가 치솟는 것과 동시에 오해와 비판이 쏟아지면서 취지가 퇴색되는 듯하다. 2009년 이래 2년여 사전 실무검토와 연구를 진행해온 민간복권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가장 큰 오해는 매달 지급받는 연금복권 당첨금이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아 일시불로 받을 때보다 불리하다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은 “물가 상승분을 감안할 때 20년 뒤 받는 500만 원의 가치가 경제상황에 따라 100만 원도 안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금복권 1등 당첨금은 세금을 제외하고 매달 390만 원가량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이 “12억 원을 은행에 넣어 두기만 해도 이자로 매달 35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당첨금 원금은 주지 않고 이자로 나눠 준다는 음모론까지 나타났다.
이런 주장은 연금복권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오해다. 연금복권은 정확히 말하면 ‘연금식 복권’이다. 이는 복권이지 연금이 아니다. 500만 원씩 20년간 세금을 제하고 분할 지급되는 추첨식 복권상품일 뿐이다. 연금이 아니기 때문에 물가 상승을 논하는 것은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고, 원금에 대한 논의도 맞지 않다. 20년간 총 12억 원을 주는 상품인 만큼 일시불로 준다면 할인율을 적용할 때 약 8억 원이 된다. 8억 원을 갖고 매월 500만 원씩 20년간 줄 수 있도록 국채를 매입하는 구조다. 원금을 안 준다는 것은 인식이 부족한 비판이다. ‘연금’이란 용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이름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가 로또 열풍을 재현해 오히려 사행심을 조장하고 노후 불안심리를 활용해 손쉽게 세수를 충당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우리나라 복권산업 구조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소치다. 연금복권이 제2의 로또 열풍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연금복권이 포함된 인쇄복권의 발행물량은 매주 최대 63억 원으로 제한돼 있다. 전량 판매되는 경우도 연간 3000억 원 수준으로 전체 복권 매출의 10% 정도다. 인쇄복권이 전체 복권매출의 40%에 육박하는 외국에 비해 훨씬 낮다.
물론 복권은 사행심을 전제로 한다는 한계가 있다. 1990년대 이후 복권 발행기관이 다양해지면서 공익사업의 자금 조달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나 해당기관의 재원을 손쉽게 확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관리감독 아래 복권을 통합적으로 운영해 기부문화로 자리 잡도록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 복권위원회를 설립해 당첨금을 제외한 복권수익금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69년 주택복권 발매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10조 원의 복권기금이 조성됐다. 지난해 조성된 복권기금만 해도 1조2000억 원에 이른다. 복권 한 장 가격 1000원 중 420원이 복권기금으로 조성된 결과다. 이 기금은 저소득층 주거안정사업을 비롯해 국가유공자 및 장애인,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등 소외계층의 복지 지원, 문화예술 진흥 등 다양한 공익사업에 사용된다. 복권의 주요 구매계층은 서민이기에 복권 발행으로 얻은 수익금은 저소득층에게 환원돼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연금복권은 절반의 행운이자 절반의 기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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