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10년 4월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가 위험한 거래에 대한 핵심 사안들을 은폐함으로써 주가 급락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한 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장면 2. 2011년 8월 한국전력의 소액주주 14명이 “원가에 못 미친 전기료로 한전이 2조8000억 원의 손해를 보았고, 이에 대해 사장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며 사장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기업체의 경영상 과실이나 실적 부진을 이유로 주주들이 경영진을 고소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비교적 흔한 일이며, 주주들이 기대 이하의 부진한 실적을 보인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행위 그 자체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전력 사장을 대상으로 소액주주들이 건 소송은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선뜻 동조하기가 힘들다.
먼저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구조를 보면 일반 기업체에서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와는 크게 다르다.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그리고 기업체 스스로의 의사 판단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경제부가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사전에 전기요금 인상 수준을 결정하고 나면 한전은 이사회를 거쳐 전기요금 조정 인가 신청을 하고 지식경제부 장관이 인가해 주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되는 구조이다.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국민들이 혜택을 보는 점도 일부 있지만 한국전력은 제조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력을 판매하고 있어 팔면 팔수록 손실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전기 공급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발생된 적자로 피해를 보는 것은 주주들뿐만은 아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원가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발생된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외부의 비난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한국전력의 경영진과 직원들도 피해자이다. 더 나아가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구조 탓에 가스 혹은 석유 등으로 소비해야 할 냉방 및 난방설비들도 상대적으로 싼 전력으로 대체하여 소비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도 결국은 피해자이다.
한국전력 김쌍수 전 사장이 지난 3년간의 재임 기간에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전기요금 현실화 등의 필요성을 각계각층에 역설하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재무 적자에 대해 경영진의 과실이 명백하다거나 경영진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면 그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전기요금 결정 구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사장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결정으로 발생된 결과를 사장 1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옳지 못하다. 장면 1과 장면 2를 비교할 때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체제에서 비용 증가에 대한 부담을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당장의 물가 안정과 서민경제 보호만 내세우며 한국전력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원가에 충실한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의 건강한 자립과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위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우리가 하락하는 한국전력의 주가보다 전기요금의 비현실적인 수준과 가격 결정 구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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