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다. 자동차보험카드의 글귀에 시선이 꽂혔다. 사고 시 손해사정인이 올 때까지 사고에 관해 언급을 자제하라는 문구였다. 연유가 궁금해 미국인 친구에게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무심코 엉겁결에 ‘미안하다(I'm sorry)’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소’라고 해석되니 주의하라는 뜻의 설명이다.
사과가 인색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의료분쟁이 끊이지 않는 병원은 특히. 병아리기자 시절 간 조직검사 후 심한 출혈로 사망한 의료사고를 취재한 적이 있다. 대학병원 측은 기술적인 발뺌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결국엔 과실치사 혐의로 의사가 기소됐다. 그때 유가족의 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과연 그렇다. 미국을 보자. 많은 병원이 ‘진실 말하기(Disclosure)’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 결과 미시간대병원은 의료사고소송이 대폭 줄었다. 소송에 가더라도 합의까지의 기간이 단축됐다(출처 ‘쏘리웍스: 의료분쟁 해결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과라고 해서 모두가 ‘선(善)’은 아니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거기엔 두 가지가 필수다. ‘유감 표명’과 ‘책임 인정’. 그게 없다면 하나마나다. 일본 정부의 사과가 좋은 예다. ‘통석의 염’(아키히토 국왕·1989년)부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간 나오토 전 총리·2010년)까지 수차례 ‘유감 표명’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가. 강제합병,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 같은 ‘책임 인정’은 전무하다. 그런 태도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독일과 늘 비교된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방문 중 유대인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 이래 ‘화해’ 무드와 국제사회에 견지해온 책임 있는 자세와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경우 사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신뢰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신경물리학자 정재승 교수(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와 ‘설득의 심리학’ 공인(公認) 트레이너인 김호, 두 사람이 함께 쓴 ‘쿨하게 사과하라’는 책의 키워드다. 거기엔 사과가 받아들여지기 위해 갖출 여섯 가지가 제시돼 있다. 변명 없이 구체적으로, 개선 의지와 재발 방지 약속 포함 등등. 그걸 대법원 판결 직후 문화방송이 낸 PD수첩 관련 사과문에 대입해 보았다.
결론은 ‘쿨하지 않은 사과’다. 첫 번째 조건 ‘변명 없이’를 갖추지 못해서다. 사과문은 제목부터 ‘무죄판결 불구’로 시작한다. 본문에도 형사상 명예훼손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문구가 두 차례나 되풀이된다. 판결의 핵심은 원고(당시 장관과 협상단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가 아니다. PD수첩이 제시한 광우병 관련 핵심정보가 거짓이라는 대법원의 판시다. 무죄판결 강조를 통해 대법원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는 식의 오해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듯해 언짢다.
미안하다는 말, 참으로 하기 힘든 말이다. 노래도 있지 않은가. 엘턴 존이 부른 ‘미안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인 것 같아(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나 그룹 시카고의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정말 힘들어(Hard to say I'm sorry)’ 같은. 하지만 사과를 피해선 안 된다. 하려거든 쿨하게 하자. ‘인간은 용서와 화해의 동물’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