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일본 간사이공항과 나고야중부공항의 입출국장은 후덥지근하고 어두웠지만 잘 움직였다. 일본인들은 부채로 더위를 식혔다. 일부 외국인만 “무슨 공항이 이렇게 덥지”라며 불평했다. 호텔은 ‘절전 방침에 따라 실내 온도를 28도로 맞춘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움직이는 게’ 간판으로 유명했던 오사카 가니도라쿠 식당의 간판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일본 정부는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처음으로 전력 사용을 제한했다. 최대수요전력(피크전력)의 15%를 줄이는 게 목표였다. 안 그래도 일본은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으로서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듯 에너지 절약을 해왔다. 그런데 일본 국민은 71일간의 전력 제한기간이 끝난 9일까지 피크전력을 21%나 절감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맛까지 본 일본인이지만 역경을 이기기 위해 함께 참는 국민성을 잘 보여줬다. 전력제한 대상은 원래 수도권과 지진피해 지역인 동북 지방의 대기업 및 상업용 빌딩이었다. 많은 기업은 손해를 감수하며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종업원에게 장기휴가를 줬다. 피크타임인 오후 2시 무렵의 전력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주문을 얼마나 잘 지켰던지 피크타임이 오후 4시로 바뀌었다.
자발적 절전 운동은 전력 사정이 괜찮은 다른 지역으로, 중소기업과 일반가정으로 확산됐다.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꺼지고 엘리베이터는 멈췄으며 노타이가 정장이 됐다. 서머타임제와 재택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기후 현은 전력을 많이 쓰는 오후 1∼3시 낮잠 시간을 뒀다. 마에다 건설회사는 머리 손질에 드는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머리를 짧게 깎도록 했다. 이런 노력이 모이자 최악의 전력난을 우려했던 예상과는 달리 예비전력이 10%가량 남아돌았다. 절전은 소비를 위축시킨 측면도 있었지만 신재생에너지와 발광다이오드(LED) 같은 새로운 산업수요를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연간 전력 소비액은 37조4000억 원이다. 일본처럼 15%만 절감해도 연간 5조6000억 원을 아낄 수 있다. 원전사고가 난 일본보다 원전 반대 목소리는 더 크면서 더위나 추위나 불편은 일본인보다 못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