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가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하사였던 형을 따라 동생은 한 달 뒤 입대했다. 당시 동생의 나이는 18세. 그 후 형은 경기 고양전투에서 전사했고 동생은 서울 수복작전, 평양 탈환작전 등 숱한 전투에서 무공을 쌓으며 용감히 싸우다 역시 장렬히 전사했다. 다행히 형의 시신은 수습해 안장했으나 동생의 시신은 60년간 비바람 속에 홀로 남겨졌다. 60년이 흐른 지금,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며 작년 10월 강원 양구군 백석산에서 동생의 유해를 발굴했다.
마침내 올해 현충일 행사 때 대통령 주관으로 ‘호국의 형제’ 안장식을 거행했다. 형 이만우 하사와 동생 이천우 중사가 그 주인공이다. 60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형제는 비로소 다시 만나 영면에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유해 발굴에 참여한 해당 부대의 상급 지휘관이었기에 남달리 벅찬 감동 속에 그 행사를 지켜보았다.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피는 것이야말로 후손들이 수행해야 할 엄중하고 당연한 임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번 ‘호국의 형제’ 안장식은 휘하 부대가 유해 발굴에 참여했다는 사실 외에도 나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군과 함께한 우리 가족의 전통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평생을 군에 몸담으셨기에 나는 군인의 아들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38년간 군복을 입고 생활하고 있다. 우리 3형제도 군복무를 마쳤거나 지금도 현역으로 있으며, 두 아들 또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이번 행사를 지켜보며 국가를 위해 몸 바친 명예로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지난해는 군인으로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한 해였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며 국방에 대한 임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용사들이 보여준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은 너무도 훌륭했다. 끝까지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침몰하는 함정과 운명을 함께했고,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적을 향해 포격을 하며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155마일 휴전선상의 일반전초(GOP)에서 밤잠을 자지 않고 묵묵히 경계 근무에 임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딸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그저 병역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자랑스럽고 보람되게 병역을 수행한 것에 최소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격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 배우 현빈의 해병대 입대가 세간의 화제가 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일부 어리석은 세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신선함을 느꼈던 것 같다. 또한 그만큼 공정한 병역 이행에 목말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앞으로 누구나 예외 없이 병역을 이행하고 또 군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젊은이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성장해 나간다면 병역은 시간 낭비가 아닌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군 간부들은 군대의 선배로서 후배들이 보람 있고 유익한 군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휘관들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훌륭한 군인으로서 모범을 보일 때 군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젊은이들에게 병역은 ‘회피하고 싶은 의무’가 아닌 내 인생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자랑스러운 권리’가 될 것이다.
그간 우리 조국을 지켜온 이름 모를 수많은 ‘호국의 형제’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아울러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공정한 병역의무 이행의 풍토가 튼실한 결실을 거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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