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 공동 취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기자는 회담장이던 고려호텔에서 뜻밖의 경험을 했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회담을 취재하던 중 야식으로 즉석 라면을 끓여 먹으려는데 뜨거운 물이 떨어진 것을 알았다. 1분이 지났을까.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북한 접대원(안내원) 2명이 끓는 물을 들고 문을 열었다.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너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듣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기자실’로 사용했던 2층 회의실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뒤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북한에서 이뤄지는 남북 회담의 막후에선 엿들으려는 쪽과 보안을 지키려는 쪽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남측 대표단은 대화 내용을 엿듣지 못하게 하는 비화기(秘話機)를 서울에서 가져가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청을 막을 수 있는 특수 장비를 이중 삼중으로 설치한다. 대화에서도 미리 약속한 은어를 사용한다. 낡은 방법이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경우도 많다. 일종의 소리 교란이다. 문서 파쇄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를 푼 휴지 한 장도 남기지 않는 것이 수칙이다.
▷대동강 섬 안에 있는 양각도(羊角島) 호텔 5층의 비밀이 공개돼 화제다. 47층짜리 호텔인데 엘리베이터에는 5층을 누르는 버튼이 없고 4층 다음에 6층에 선다. 중국계 미국인 캘빈 선 씨는 지난달 방북해 동료 관광객 5명과 함께 양각도 호텔 5층에 잠입해 목격한 내용을 블로그(monsoondiaries.com)에 올렸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벽면에는 ‘승냥이 미제를 천백 배로 복수하자’ ‘우리 장군님 제일이야’라고 적힌 대형 선전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문이 열려 있는 방에는 책상 하나와 도청장치로 보이는 기기가 놓여 있었다.
▷객실 1001개의 이 특급호텔엔 북한 주민이 모르는 비밀이 더 많다. 호텔 꼭대기 회전전망대에서는 일부 특권층이 한 병에 100달러가 넘는 발렌타인 17년산 위스키를 마신다. 남측 인사들을 만나면 ‘공화국’의 우월성을 침 튀겨가며 설명하던 보위부 직원들은 1시간에 40달러를 내고 안마를 받는다. 북한 근로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기껏해야 2달러 미만이다. 이런 체제를 인민공화국이요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는 게 김일성 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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