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흥식]기부하면 훈장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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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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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부문화를 진작하는 일은 너무나 아름답다. 영국의 민간단체인 자선부조재단(Charities Aid Foundation)이 조사한 ‘2010년도 세계 기부지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53개국 중 81위에 불과하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기부문화를 활성화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최근 국회에서 고액 기부자들이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는 여당의 발상은, 기발한 감도 있지만, 상당한 무리수임을 짐작하게 한다.

우선, 훈장은 상훈법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이나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로가 있는 자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공로란 목적을 이루는 데 들인 노력과 수고, 또는 그 목적을 이룬 결과로서의 공적을 뜻한다. 과연 고액 기부가 뚜렷한 공로인가 하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 고액 기부자에게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국가유공자 대우는 국가의 존립과 위기를 극복하신 분과 후손에게 국가 보훈의 차원에서 대우하는 것으로서 기부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돈으로 국립묘지를 분양받는다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얼마 전 가수 김장훈 씨가 지난 10년간 100억 원 넘게 기부했지만, 자신은 월셋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여당이 ‘명예기부자법’(일명 김장훈법)을 발의하여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점처리 법안으로 선정토록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 법안은 30억 원 이상 기부한 사람을 ‘명예기부자’로 선정하고, 행정안전부에서 이들을 등록 관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60세 이상 명예기부자 중 개인의 총재산이 1억 원 이하이고 소득이 없을 경우엔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하고, 병원 진료비와 본인의 장례비도 국가가 전액 혹은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0억 원 이상 기부한 사람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데 따라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원래 기부란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기부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가 없이 내놓는 기부의 아름다운 뜻을 살리면서 추진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액 기부도 중요하지만 쥐꼬리만 한 돈을 버는 사람들의 기부금도 값짐을 살펴야 한다. 성경에서 과부의 동전 한 닢을 부자가 내는 어떤 것보다 가장 귀하게 여김을 되새겨야 한다. 결국 기부는 자발적이어야 함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기부는 반드시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자원봉사도 소중함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전제에서 기부가 과도한 과세로 이어지는 일을 막아야 하며,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기부금품 모집이 가능한 사업을 확대하면서 모금 과정의 투명성을 증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익활동의 적합성, 회계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해 공익신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공익신탁 법제 개선도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쉬운 기부 여건을 조성하고 기업이나 저명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명예기부자 보호를 위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 하나, 반드시 짚어야 할 게 있다. 기부는 사회에서 상당히 귀한 것이지만 그래도 현대 사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의 최우선은 국가가 하는 것이다. 사회보장제도를 견실히 만들어 시행하는 일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떤 국가든 기부로 시급한 사회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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