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남북 합동교향악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올해 광복절 임진각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이 오케스트라는 유대인 지휘자 바렌보임과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팔레스타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9년 문명 간 공존과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만든 관현악단이다. 이스라엘 출신 단원과 함께 그와 적대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이란 등 중동 국가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주 북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남북한 연주자들로 이뤄진 합동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 지휘자 밑에 남북한 연주자 동수로 구성된 교향악단의 구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6월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자 서울에서 열리는 ‘린덴바움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인 샤를 뒤투아가 평양을 방문해 남북한 청소년 50명씩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구성에 대해 북한 측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었으나 통일부의 불허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뒤투아에게 선수를 뺏길 뻔했던 정 예술감독의 마음이 바빴나 보다. 자크 랑 프랑스 하원의원의 도움을 얻어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다. 랑 의원은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해 조만간 문을 열 프랑스의 평양 상주사무소 개설에 물꼬를 텄다. 그는 문화부 장관 재임 시 정 감독을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 감독으로 초빙했던 만큼 둘 사이는 각별하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한국판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가 탄생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웨스트이스턴 디반은 ‘서동(西東)시집’으로 번역되는 독일 문호 괴테의 작품 이름이다. 괴테가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은 뒤 영감을 얻어 쓴 시집으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디반은 평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무지에 대항하는 프로젝트”라는 바렌보임의 말에 공감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잘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같이 앉아 연습하고 연주하다 보면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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